咸陽朴氏(함양박씨)
함양박씨(咸陽朴氏) 시조 박언신(朴彦信)은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이다. 그가 속함대군(速咸大郡 : 속함은 함양의 옛 명칭)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았다. 이후 신라팔공자(新羅八公子)가 분봉(分封)된 뒤 계속된 변혁으로 문헌이 없어져 세계가 실전되었다. 후손들이 고려시대에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내고 함양군(咸陽君)에 봉해진 박선(朴善)을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함양(咸陽)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였다. 박선의 현손 박신유(朴臣蕤)는 고종 때 김경손(金慶孫)과 더불어 나주(羅州)에서 초적(草賊)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응천군(凝川君)에 봉해졌다.
박신유의 아들 6형제 대에서 다음의 6파로 갈라졌다.
박지문(朴之文)을 파조(派祖)로 하는 소감공파(少監公派),
박지빈(朴之彬)을 파조로 하는 문원공파(文元公派),
박지량(朴之亮)을 파조로 하는 판삼사사공파(判三司事公派),
박지수(朴之秀)를 파조로 하는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박지온(朴之溫)을 파조로 하는 감찰어사공파(監察御史公派),
박지영(朴之穎)을 파조로 하는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이다.
함양(咸陽)은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때는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성(含城)이라 하였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천령군(天嶺郡)이라 개칭하였고, 이안현(利安縣 : 安陰) · 운봉현(雲峰縣)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고려 초에 허주(許州)로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에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練使)로 승격하였으나 1010년(현종 1) 함양군으로 개칭하였고, 1172년(명종 2)에 함양현으로 강등되었다. 1395년(태조 4) 함양군으로 승격하였으며, 1629년(인조 7)에 현으로 바뀌었고 1729년(영조 5) 함양부(咸陽府)로 승격하였다가 1788년(정조 12) 다시 함양군으로 강등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함양군, 1986년 경상남도 함양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안의군(安義郡)에 있던 현내(縣內) · 황곡(黃谷) · 초점(草岾) · 대대(大垈) · 지대(知代) · 서상(西上) · 서하(西下) 등 7개 면을 통합해서 함양군으로 합병하였다. 1933년 위성면이 함양면으로 개칭되고, 1957년에는 석복면(席卜面)을 함양면에 통합하여 함양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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