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婆娑尼師今(파사 이사금)

한들 약초방 2015. 3. 13. 16:47

 

                     婆娑尼師今(파사 이사금)

 

 

A.D 80년 즉위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은 유리왕(儒理王)의 둘째 아들(혹은 유리왕의 아우 奈老의 아들이라고도 함)이다. 비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니 갈문왕(葛文王) 허루(許婁)의 딸이다. 처음 탈해가 돌아가니 신료들이 유리왕의 태자 일성(逸聖)을 세우려고 하던 차 어떤 사람 말이 "일성이 비록 적자이지만 위엄과 총명이 파사만 못하다"고 하므로 드디어 파사를 세웠다. 파사가 절검(節儉)하여 용(用)을 줄이고 백성을 사랑하니 국민이 아름답게 여겼다.

婆娑尼師今 立 儒理王第二子也 <或云儒理弟1)奈老之子也> 妃金氏史省夫人 許婁葛文王之女也 初脫解薨 臣僚欲立儒理太子逸聖 或謂 逸聖雖嫡嗣 而威明不及婆娑 遂立之 婆娑節儉省用而愛民 國人嘉之

 

「2년 봄 2월 친히 시조의 사당에 제사하였다.

二年 春二月 親祀始祖廟

 

「32년 여름 4월 성문(城門)이 저절로 무너졌다. 5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三十二年 夏四月 城門自毁 自五月至秋七月不雨」

 

「33년(A.D 112년) 겨울 10월 왕이 돌아가니 사릉원(蛇陵園) 안에 장사하였다.

 三十三年 冬十月 王薨葬蛇陵園內」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이 파사매금(波沙寐錦)으로 적혀 있다. 광개토왕비문에도 신라 임금이 매금(寐錦)으로 적혀 있는데, 매금은 신라 임금을 낮추어 부른 말이다.

파사이사금기(婆娑尼師今紀) 32년(A.D 111년) 4월조는 월성(月城)에 정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은유법으로 적은 것이다.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은 이 정변이 있은지 1년 6개월 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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