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씨는 신라 시조왕으로 부터 무릇30세대에 밀성대군에 이르니대군은 경명왕의 큰 아들이다
그 분 부터 비로서 밀성비 관향이 되고 고관대작으로 서로 이어 아홉번 세대를 거쳐 휘원에 이르러 곧 사문진사공이니 혹은 국자진사라고도 한다 할아버지 휘 언부는 고려 태종조에 태사 중서령 문하시중 도평의사로 밀성 부원군에 봉하여지고 아버지 휘 의신은 문장이 세상에 뛰어나서 인종조에 벼슬이 공부상서에 이르다 삼가 고대의 제도를 고찰컨데 사문진사라 하는것은 사문학의 교관이요
국자진사라 하는것은 국자학의 교관이니국자학은 오늘의 대학이다
당나라 때부터 국자학의 사문에 학사를 세워 뛰어난 재주 있는 사람을 교육시키어 하여금 국가의 재목이 되도록 하였으니 부군이 세상에 도움이 됨을 가히 생각하면 알지니라 보첩에 이루되 부군의 묘소가 밀양 귀명동 에 있고 유지는 풍각화산에 있다
하나 연대가 오래되어서 여러차래 변천을 겪은지라 묘소도 적실치 못하고 평생의 언행과 사적과 배위의 성씨등이 모두 알길이 없으니 탄식하면 무엇하며 억울한들 어찌허랴
그렇다고 보첩에 실전한 기록만 믿고말면 후손된 이 마음에 미안한 정을 억제할 수 없어 지난 임술년 가을에 내가 송정리 거주 종가 대표 용규씨와 문임 문채씨와 밀양거주 흥규씨와 귀명산하 동민 수 3인으로 작게 탐사반을 편성하여 두루 귀명동을 밟았으나 그러나 산은 적적히 말이 없고 물은 넘실 무심하며 다만 뜬 구름과 새 지저귀는 소리 뿐이라 돌아와서 종중에 보고하고
묘단을 김제 군북 삼수동에 설치하여 해마다 시제 지내는 곳이되니 대개 부군의 6 세손인 간의 대부공 휘 인익 과 7세손인 정재공 휘 의종의 묘위가 이곳에 있음이니라
오호라 부군이 하늘에 계신 영혼이 이로부터 편히 흠향할 곳 있으니 다행스럽다 하리라
사문진사공파 박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