蔚山朴氏(울산박씨)
울산박씨(蔚山朴氏) 시조 박윤웅(朴允雄)은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인 국상공(國相公) 박교순(朴交舜)의 7세손으로서, 1099년(숙종 4) 동여진(東女眞)의 10만 대군이 침공해 왔을 때 이를 물리쳤고, 예종 때 재침한 여진족을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 장군과 더불어 격퇴시켰다. 그 후 흥려백(興麗伯 : 흥려는 울산의 옛 이름)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종파인 용당파(龍塘派), 초산부사공파(楚山府使公派), 기장통덕랑공파(機張通德郞公派), 송경파산공파(松京坡山公派), 말응부위공파(秣應副尉公派), 연암가선공파(蓮巖嘉善公派), 명곡군수공파(椧谷郡守公派), 평해남계공파(平海南溪公派), 제내군수공파(堤內郡守公派), 유곡판관공파(裕谷判官公派), 강화참판공파(江華參判公派), 부내불항신공파(府內不降臣公派), 옥련참판공파(玉輦參判公派), 보령현령공파(保寧縣令公派), 경주현감공파(慶州縣監公派), 부령강릉백파(富寧江陵伯派), 대흥찬성공파(大興贊成公派), 대흥판서공파(大興判書公派), 대흥부사공파(大興府使公派), 부여진사공파(扶餘進士公派), 풍암좌랑공파(楓巖佐郞公派), 영동전서공파(永同典書公派), 옥천도사공파(沃川都事公派), 하양합문지후공파(河陽閤門祗侯公派)
울산(蔚山)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는 진한(辰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으로 파사왕(婆娑王) 때에 지변현(知邊縣 : 戒邊城 · 神鶴城 · 火城郡)을 설치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하곡현(河曲縣)으로 고쳐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 991년(성종 10)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울주군(蔚州郡)이 되어 속현으로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陽縣)을 관할하였다가 방어사로 고쳤다.
1397년(태조 6)에 진(鎭)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선조 31)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되어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게 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울산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이 되었다.
고려 성종 때, 울산의 별칭을 학성(鶴城)이라고 하였다. 1906년에는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斗入地)인 외남면 · 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관된 대신 경주의 두입지인 외남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울산군의 21개 면이 14개 면으로 통합되었고, 언양군은 폐지되어 언양군의 6개 면이 5개 면으로 폐합, 울산군에 편입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울산읍을 시로 승격하였다. 1995년에 울산시와 울산군을 통합하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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