忠州朴氏(충주박씨)
충주박씨(忠州朴氏) 시조 박영(朴英)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인 사벌왕(沙伐王) 박언창(朴彦昌)의 11세손으로서 《충주박씨세보(忠州朴氏世譜)》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그의 아들 박신(朴臣)은 검교신호위대장군(檢校神虎衛大將軍)을 지냈으며, 그의 손자(孫子) 박원숭(朴元崇)은 삼사우사(三思右使)를 역임했으며, 증손 박득승(朴得升)은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지냈다. 관향을 충주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의정공파(參議公派), 강릉공파(江陵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제주공파(濟州公派), 집의공파(執義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함경도파(咸鏡道派), 평안도파(平安道派), 찬성공파(贊成公派), 영동공파(永同公派), 첨정공파(僉正公派), 문간공파(文簡公派), 의정공파(議政公派)
충주(忠州)는 충청북도 중앙부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BC 3∼4세기에는 마한에 속하였다. 그 뒤 마한이 백제에 병합되었으나, 다시 고구려에 속해 475년(고구려 장수왕 63) 국원성(國原城)이라 하였다. 557년(신라 진흥왕 18) 국원소경(國原小京)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 중원소경(中原小京)이라 개칭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충주라 개칭하였고, 983년(성종 2) 충주목(忠州牧)이라고 하였다. 995년(성종 14) 창화군(昌化軍)으로 바꾸고 절도사(節度使)를 파견하여 중원도(中原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바뀌었다가 1018년에 전국의 8개 목 중 하나가 설치되어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1254년(고종 41)에 국원경(國原京)으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목으로 환원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충주로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충주목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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