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解次次雄
A.D 4년 즉위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은 말하기를 '무당을 말하는 방언'이다. 세인이 무당으로써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받들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드디어 존장자를 자충(慈充)이라 하게 되었다 함)은 혁거세의 적자다. 몸이 장대하고 성질이 침후(沈厚)하며 지혜가 많았다. 어머니는 알영부인(閼英夫人)이요 비는 운제부인(雲帝夫人:혹은 阿婁夫人)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즉위하고 원년이라 칭하였다.
南解次次雄立[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巫事鬼神 尙祭祀 故畏敬之 遂稱尊長者爲慈充)] 赫居世嫡子也 身長大 性沈厚 多智略 母閼英夫人 妃雲帝夫人 (一云阿婁夫人) 繼父卽位稱元」
「원년 가을 7월 나라(樂浪:註 강원도 지방 나라)의 군사가 와서 금성(金城)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니 왕은 좌우더러 이르기를, "이성(二聖)이 나라를 버리시고 외로운 이 몸이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외람 되게 높은 자리에 앉게 되니 위태롭고 두려움이 큰 냇물을 건너는 것 같은데, 지금 이웃 나라가 와 침범하는 것도 나의 부덕한 탓이니 이를 어찌하오" 하니 좌우의 대답이 "적이 우리의 상사(喪事)를 다행으로 삼아 함부로 군사를 끌고 왔으니, 하느님이 반드시 돕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윽고 적이 퇴군하여 돌아갔다.
元年 秋七月 樂浪兵至 圍金城數重 王謂左右曰 "二聖棄5)國 孤以國人推戴 謬居於位 危懼若涉川水 今 國來侵 是孤之不德也 爲之若何" 左右對曰 "賊幸我有喪 妄6)以兵來 天必不祐 不足畏也" 賊俄而退歸」
「3년 봄 정월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 三年 春正月 立始祖廟」
「7년 가을 7월 탈해로 대보(大輔)를 삼고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겼다. 七年 秋七月 以脫解爲大輔 委以軍國政事」
「20년 가을 태백(太白)이 태미(太微)로 들어갔다. 二十年 秋 太白入太微」
「21년(A.D 24년) 가을 9월 누리가 일었다. 왕이 돌아가니 사릉원(蛇陵園) 안에 장사지냈다. 二十一年 秋九月 蝗 王薨葬蛇陵園內」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 때는 왕의 명칭이 차차웅(次次雄)이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차차웅이 무당을 뜻하는 방언이라고 적혀 있다. 이 차차웅은 단순한 무당이 아니고 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님과 달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관(神官)의 명칭이다. 위 남해(南解)라는 말은 남쪽에 있는 해(解:太陽=天帝)라는 뜻이므로, 남해(南解)는 신라왕이 되기 이전에 이미 신라의 남쪽 방면에서 자칭 해님의 아들을 칭하였다. [註:남해(南解)는 그 명칭으로 보아 남해의 근거지는 탈해의 근거지인 서지촌 아진포(감포읍 나정리나 대본리 방면)보다 더 남쪽에 있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적자(嫡子)라고 적혀 있지만, 박혁거세기(朴赫居世紀)에 적혀 있는 은유법 문구에 의하면 남해차차웅은 석탈해와 연합하여 박혁거세로부터 왕위를 빼앗았으므로, 남해차차웅은 박혁거세의 적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남해차차웅이 박혁거세의 적자로 적혀 있는 것은, 신라의 사가가 정변을 감추고 신라 왕통의 연속성을 가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남해차차웅기(南解次次雄紀) 7년조에는 석탈해(石脫解)를 대보(大補)로 임명하여 석탈해에게 군국정사를 모두 맡겼다고 적혀 있다. 이는 석탈해가 남해차차웅과 연합하여 박혁거세를 쫓아낸 공으로 대보(大補)가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신라의 실권(實權)은 석탈해가 장악하였다. 남해차차웅기(南解次次雄紀) 20년조에는 태백(太白)이 태미(太微)로 들어갔다고 적혀 있다. 이는 석탈해 때문에 남해차차웅이 유명무실한 존재로 변했다는 것을 은유법으로 적은 것이다. 다음해(A.D 24년) 9월에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이 죽자 석탈해(石脫解)는 남해차차웅의 아들 유리(儒理)를 왕으로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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