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 충헌공의 제단 음기,
고려 내부시승 금자광록대부 밀성군 시충헌공 휘척 제단 비명, (고려 내부시승 금자광록대부 밀성군 시충헌공 휘척은 우리의 중시조이시다) 밀성박씨는 우리나라의 대성이다, 신라 경명왕의 왕자이신 휘 언침게서 밀성대군으로 봉군 됨으로부터 비롯하여 이후 벼슬이 대를 이어 전하였으니 삼한 벽상 공신이신 휘욱 요동독포사이신 휘 난 과 밀성부원군 휘 언부는 다 여조의 명현이며 태사(세자의 스승)직에 종사하였다, 5대를 내려와 휘 척이 계시니 기품과 절개가 웅대하여 경학과 사서에 능통하여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이 내부시승에 이르고(재화를 관리하는 관청,현 내무부장관) 순충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에 밀성군으로 봉해졌으며 금자광록대부의 언총더하여지고 충헌의 시호를 증증받고 패지(공신에게 주는토지)를 하사받으니 옛 밀주(밀양)수산현(밀양시 하남읍)에 있으며 자손이 세세로 계승하여 녹을 받아왔다, 충선왕이 세자일때 정가신과 민궤등과 함게 원나라에 가서 3년을 지넬제(휘 척) 도 함게 수행하여 김신과 더불어 번양에서 높이 뫼시는대 힘쓰고 충선왕을 모시고 돌아와서 즉위하였으나 왕소유와 소방영이 정사를 마음대로 전횡하므로 공(휘 척)이 의론하여 이들을 주살하니 이에비로서 충선왕이 국정을 전담하게되어 조야가 서로 가까워 지고 태평하게 되었다, 고조의 휘는 의신이며 상서 공부 시호는 문열공으로 고려 인종묘에 배향 되었으며 중조의 휘는 윤이며 태자태부대사감근무 이고 조부의 휘는 효연으로 부문각 학사이며 부친의 휘는 지영이며 고려 고종조에 정시갑과에 합격하였으나 뜻이 청고하여 벼슬에 나가질않고 읽찌기 중국에 들어가니 중국사람이 해동신선(해뜨는나라의신선) 이라고 칭하였다, 어머니는 영양 이씨이고 부인은 아림군부인 경주이씨이다, 천성이 온순하고 능히 경서사적을 섭력하였으며 일남을 낳으니 휘는 성진이라, 고려 충숙왕때 조현대부 흥위위정용장군협찬 공신이며 문화평리를 증받았고, 손자의 휘는 원으로 판전교시사 규의 선력 공신이고, 증손 윤겸은 중량장이며, 윤문은 삼중대광보문각대제학 이며 그이후는 생략하여 기록하질 않는다, 아!아! 공과 부인의 묘는 여러집안의 보첩으로 보아 수산현에 있다고하고 그유적도 풍각면 화산에 있으나, 세대가 오래되어 실전되었으므로 의연히 일어나 제단을세우고 향제를 모셨다, 그러나 규모가 대단히 검소하므로 지난병진 서기1976년에 경향의 여러 후손들이 이를넓히고 단을다듬어 단비를 개수하니 어찌다행이아니랴, 종원 광한으로 하여금 용숙이쓴 공의행록을 가지고와서 나에게 명문을 청하니 글하여 가로되 신라의 골품으로 성골이 아니고 진골이신 경명의가계에서 상서로운 귀인이 비로서 태어나서 밀성군에 피봉되어 천명을 쇄신하니 어찌빛나지않으리오, 공의성은 크게덜치고 충헌의 칭호는 크게날려서 선대를께껏하게 이어며 결사에 해박하고 기와 절개 깊고깊다, 역대 조정의 반열에 오르고 충순찬화공신이 되었는대 때마침충선왕이 타국원나라에 빈객(사위)뒴에 힘쓰심왕이되도록 도모하고 쳐세행도이자유롭고 소인배를 섬멸하니 신료들이 강화하고 왕권이 비로서 정착하고 정치가 비로서 고르게 되다, 이에 봉작을 세습하고 녹봉이 무한하며 옛터를 세로넓혀 후손에게 길을 열어주시니 사패지 수산골이 오매불망 무성하다, 아림현부인의 천품이 정숙하니 아름다운 양위분이 장검쳐름영원하리 고사가 실전되어 누대의 오랜역사 잠겼으나 훌륭한제단이있고 단아래 무덤이 우뚝하니 훌륭하신 척 할아버지가 그신이라, 돌을다듬어 높이세우고 삼가 예법에 따라 수행하니 내 거짖없이 가히 소리높여 외치노라, 서기1978년 가을 9월 문학박사 이가원이 삼가쓰고 같은해 10월에 후손용보가 삼가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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