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재(募雅齋)
경북 밀양시 청도군 청도면 고법리 팔방마을 명방촌(淸道面 古法里 明坊村)
密城朴氏 七賢
세거(世居)하는 밀양(밀성)박씨 일문(一門)의 12중조의 한 분인
선조 삼사좌윤공(先祖 三司左尹公) 휘 을재(諱 乙材)를 주벽(主壁)으로
휘 원의(元義),
휘 린우(麟祐),
휘 위(威),
휘 천,
휘 수,
휘 령(齡)을
칠현 중조(七賢 中祖)로 경내의 경현사(景賢祠)에 배위를 봉안하고 추모향재(追慕享齋) 하는 재숙소(齋宿所)로 삼사좌윤공의 이십사세 후손 귀흠(貴欽), 창규(昌圭) 등의 주간(주간)으로
1995년에 후손의 성력창건(誠力創建)한 재실이다.
삼사좌윤공의 휘 을재는
호가 아천(雅川)이며 밀성대군 휘 언침의 칠세손으로 고려 고종시대에 문과급제 밀직부사와 삼사좌윤공이다.
휘 원의공은
광록대부(光祿大夫)와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로 태안부원군(泰安府院君)에 봉(奉)하였고 시호는 혜문공(惠文公)이며,
휘 인우공의 호는 초암(草菴)이며
고려조인(高麗朝人)으로 전법판서(典法判書)이며 조선조에는 증 병조판서이고
휘 위공은
공양왕 원년(恭讓王 元年)1389년에 판혜혜부사로 제수(除授)받고 일등공신이며
경상도 도원수(都元帥)로서 대마도를 정벌하여 공적을 높였고 고려충의백(高麗忠義伯) 정국군을 봉하였으며
휘 천공은
정국군 휘 위의 동생(弟)로서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 崇祿大夫)와 영의정에 이르러 구산군(龜山君)에 봉 하였고
휘 취공은
조선 태종 시대에 청백이로 이조정랑(吏曹正朗)이며 증 가선대부(嘉善大夫)이며
휘 령공은
공민왕조 인으로 창원도호부사(昌原都護府使)로 창원군(昌原君)에 봉 하였고
조선조에는 증 정헌대부(正憲大夫)와 이조판서이며 시호는 양정공이다
모아재 창건 의 제족(諸族) 후손등이 순모협동(詢謨協同)으로
지성모금한 헌성록(獻誠錄)의 사각비가 경내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