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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제기崇募濟記

한들 약초방 2015. 3. 17. 15:48

숭모제기崇募濟記

 

 

내 일찍이 신라사를 보니 신라 시조왕의 사적에 6부의 대인이 양산정의 서기를 바라보고 가보니 큰 알이 샘 한다운대 떠있어 쪼개어보니 어린 아이가 나왔다, 장성하여서 세워 임금을 삼고 그때 사람이 이 표주박을 박이라 하는고로 박으로 성을 하였다,하며 6부가 보좌하여 삼한이 왕에게 돌아오고 번갈아가며 석씨와 김씨에게 전위하여 천년의 국가를 전하였다,하니 아름답다 요순의 읍양의 풍을 여기서 다시 볼수있으나 일이 다르고 세대가 멀어 글만 전부 믿을수도 없더니 병오년 봄에 내가 경주 군수가되어 고적을 알아보던 중 나정탄강 한 곳을 촌늙은이가 손으로 가리키고 숭덕전 위판 모신 곳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오릉의 송백이 울창히 눈앞에있어 내가 비로소 시기가 헛되이 전치 않음을 믿었다 어떤날에 성손 영복씨가 나에게 와서 왈(시조왕의 위폐 모신숭덕전은 이미 있으나 열선조외 능묘는 전폐할곳이 없음을 수 없어 미약한 후손이 힌을 다하여 돈을 모아 임인년 봄에 재실을 숭덕전 남쪽 十리허의 배일촌 동쪽에 지었으니 곧 四왕릉묘의 일이라 오산이 우러러 보고 문수가 뒤에 있고 서로는 선도산이 보이고 남은 남계가 돌아 용이 나르는듯 봉이 춤추는듯 명당에 서렸으니 이제 비록 자손이 사사로이 지었으나 은연히 숭덕전과 비교되는지라 갑진년 가을에 협재를 더짓고 숭모라 현판하니 대개 숭봉 추모함을 취함이라 이제 낙성하였다)하며 나를 청하여 재기를 지어라 하니 내 옛일에 감동하고 그 성의가 아름다워 그 전말을 기술하다,

광무 十一년 정미 四월 일

경주군수 민영만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