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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욱 사실

한들 약초방 2017. 3. 19. 10:36

    휘 욱 사실   

 

경명왕의 손자이며 밀성대군 언침의아들,고려태조때
삼한벽공도 대장군 을지냈다,

삼한벽공도대장군목상 ( 三韓壁控都大將軍木像 ) ;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13호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 말,
고려시대 초의 공신 밀성박씨 상조 박욱(朴郁)의 상으로 밀성박씨문중 소유이며 문중에서 관리한다. 박욱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군도를 토벌하고 건국 사업에 공을 세워 삼한벽공도대장군에 봉해졌다.
목상은 원래 밀양부 추화산성(推火山城)에 있던 성황사(城隍祠)에서 성황신(城隍神)으로 받들던 것인데 1894년(고종 31) 후손들이 밀성박씨 대종회 재실인 익성사(翊聖祠)를 창건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박욱의 아들로 요동독포사를 지낸 박란(朴瀾)의 위패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삼중대광사도광리군목상 ( 三重大匡司徒廣理君木像 ) ;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밀성손씨문중 소유로 문중에서 관리한다. 광리군(廣理君) 손긍훈은 밀양시 교동을 중심으로 대대로 거주하는 밀성손씨의 중시조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에 선록(選錄)되고 삼중대광사도광리군에 봉해졌다.
목상은 삼한벽공도대장군 박욱(朴郁)의 목상과 함께 밀양 추화산성(推火山城)에 있는성황사(城隍祠)에서 성황신(城隍神)으로 받들어졌다. 1894년(고종 31)에 박욱목상은밀성박씨 재실인 익성사로 옮겨갔고, 손긍훈의 목상은 뒤에 밀양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추화산성 ( 推火山城 ) ;
1990년 1월 16일 경상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교동과 용활동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둘레 약 715m의 석성으로 `추화"라는 명칭은 밀양의 옛 지명이다. 밀양읍성(경남기념물 167)으로부터 동쪽 약 2㎞ 지점, 해발 243m의 추화산마루에 있으며, 신라가 가야제국을 낙동강변에서 대치하고 있던 시대에 축성된 이른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지(山城址)로 추정하고 있다.
터의 면적은 90,912㎡이다.
또한 이 산성에는 성황사(城隍祠)가 남아 있는데, 고려 태조를 도와 건국에 공을 세운 삼중대광사도 광리군(三重大匡司徒廣理君) 손긍훈(孫兢訓) 장군과 삼한벽공도대장군(三韓壁控都大將軍) 박욱(朴郁)의 공훈을 추모하기 위해
고을사람들이 추화산 성황(城隍)에 사당(祠堂)을 세워 제향을 받들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추화산 서북부 정상에는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만운재 ( 萬雲齋 ) ;
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72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경명왕의 장남으로 밀성박씨(密城朴氏)의 상조(上祖)인 밀성대군 박언침(朴彦枕)을 경모하여 후손들의 결의로 박해철(朴海澈)이 1927년 건립하였다.
단층 팔작지붕 목조와가로 정면 6칸, 측면 2칸이다.
경덕단(景德壇), 외삼문(外三門)과 부속건물로 박해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경초재(景肖齋)와 정당(正堂)인 유경각, 영정각 등이 있다.
경덕단에는 밀성대군과 그 아들 박욱(朴郁), 손자인 고려 개국공신 박란(朴瀾) 등 3위를 모셔놓았다. 외삼문은 앙경문(仰景門)이라는 단층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정면 9칸, 측면 2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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