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우리소리

흥보가

한들 약초방 2015. 10. 3. 09:29

          흥 보 가

 

 

1. 흥보가 쫓겨나는 대목

[아니리] 아동방(我東邦)이 군자지국(君子之國)이요, 예의지방이라. 십실촌(十室村)에도 충신이 있었고, 삼척 유아라도 효제(孝悌-효도와 우애)를 일삼으니, 어찌 불량한 사람이 있으리요마는, 요순(堯舜)의 시절에도 사흉(四凶)(중국의 요임금과 순임금 때에 니라를 해치던 흉악한 죄인인 공공, 환두, 삼묘, 곤 네 사람) 이 있었고, 공자님 당년(當年)에도 도척이라는 사람이 있었으니, 어찌 일동여기(一洞如己-한 마을 사람이 모두 저와 같기를, 곧 모두가 착하기를)를 인력으로 할 수가 있나!
전라도는 운봉이 있고, 경상도에는 함양이 있는데, 운봉, 함양, 두 얼품에 박씨 형제가 살았으되, 형 이름은 놀보요, 아우 이름은 흥보였다. 사람마다 다 오장(五臟)이 육부(六腑)인데, 놀보는 오장이 칠보였다. 그 어찌 칠보냐 하며는, 이놈이 밥곧 먹으면, 남한테 심술 부리는 보 하나가 왼쪽 갈비 속에 가서 장기 궁짝(장기에서 궁을 나타내는 장기말)만헌 것이 붙어 가지고, 병부(兵符) 줌치(주머니) 찬 듯 딱 이놈이 앵겨 가지고, 남한테 심술을 부리는데, 꼭 이렇게 부리것다.

[잦은 중몰이] 놀보 심사 볼작시면, 술 잘 먹고 쌈 잘 하기, 대장군방(大將軍方-나쁜 방위) 벌목시켜, 오귀방(五鬼方-가장 나쁜 방위. 이 방위로 가면 모든 일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함)에 이사 권코, 삼살방(三煞方-점술에서 불길한 살기가 낀다는 방위)에다 집 짓게 하고, 남의 노적(곡식을 쌓아둔 곳)에 불 지르고, 불 붙는데 부채질, 새 초분(草殯)에도 불 지르고, 상인(喪人) 잡고 춤추기와, 소대상(小大祥)에 주정 내여 남의 젯상 깨뜨리고, 길 가는 과객 양반 재울 듯이 붙들었다 해 다 지며는 내어 쫓고, 의원 보며는 침 도적질, 지관(地官) 보며는 쇠 감추고, 새 갓 보면 땀때 떼고, 좋은 망건 편자 끊고, 새 메투리는 앞총 타고, 만석 당혜 운두 끊고, 다 큰 큰애기 겁탈, 수절 과부 모함 잡고, 음녀(淫女) 보며는 칭찬하고, 열녀 보면 해담(害談-험담)하기, 돈 세는데 말 묻기와, 글 쓰는데 옆 쑤시고, 사주병(蛇酒甁)에 비상 넣고, 제주(祭酒)병에다 가래춤 뱉고, 옹기 진 놈 가래 뜨고, 사기짐은 작대기 차고(사기짐을 지워 받쳐 세워놓은 지게 작대기를 차고), 우는 애기는 발구락 빨리고,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새암() 가상이(가장자리) 허방을 놓고, 호박에다가 말뚝 박고, 곱사동이는 되집아놓고, 앉은뱅이는 태껸하고, 이런 육시를 헐 놈이 심술이 이래 노니,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이런 난장(亂杖)을 맞을 놈이!

[아니리] 심술이 이래 노니, 삼강오륜을 알며, 형제 윤기(倫紀-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인들 알 리가 있겠느냐? 하로는 이놈이, 비 오고 안개 다뿍 찐 날, 와가리 성음을 내어 가지고 제 동생 흥보를 부르는데, 네 이놈, 흥보야 흥보 깜짝 놀래, 형님, 저를 불러겠습니까? 오냐, 너 불렀다. 너 이놈, 네 자식들 장개를 보냈으면 손자를 몇을 놓쳤겠니? 너 이놈, 늙어가는 형만 믿고 집안에서 헐일 하나 없이 되똥되똥 슬슬 돌아 다니는 게 내 눈궁둥이가 시어 보아줄 수가 없구나, 요놈. 오날부터서는 네 계집, 자식 쏵 다리고 나가부러라! 아이고, 형님.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고 무엇이고 쓸데없어, 썩 나가! 너, 내 성질 알제, 잉. 만일 안 나가서는, 이놈, 살육지환이 날 것이다, 이놈. 썩 나가!

[중몰이] 흥보 듣고 기가 맥혀 놀보 앞에 가 꿇어 엎져, 아이고, 여보 형님, 별안간 나가라 허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이 엄동설한풍에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 숙제 주려 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형님, 한번만 통촉하옵소서. 이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 주랴?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 흥보 기가 맥혀 안으로 들어가서 여보, 마누라. 들어 보오. 형님이 나가라 허니 어느 영이라 거역하며, 어느 말씀이라고 안 가겄소. 자식들을 챙겨 보오. 큰자식아, 어디 갔나? 둘쨋놈아, 이리 오너라. 이삿짐을 챙겨 지고 놀보 앞에 가 늘어 서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소서. 잘 가거라. 울며불며 나갈 적에,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는 네것 내것 다툼없이, 평생에 호의호식 먹고 입고 쓰고 남고 쓰고 먹고도 입고 남어 세상 분별을 몰랐더니,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一朝)에 이리 될 줄을 귀신인들 알겼느냐? 여보소, 마누라. 어느 곳으로 갈게? 아서라, 산중으로 가자. 경상도는 태백산, 전라도로는 지리산. 산중에 가 사자 허니 백물(百物)이 귀하여 살 수 없고. 아서라, 서울로 갈까? 서울 가서 사자 허니 경우를 모르니 따구만 맞고, 충청도 가 사자 허니 양반들이 억시여서 살 수가 없으니, 어느 곳으로 간단 말이냐?
[아니리] 그렁저렁 돌아다닐 적에, 고을에를 찾아 들면 객사(客舍), 동대청(東大廳-
동헌)에도 좌기(坐起)를 하야 보고, 빈 물방아실에도 좌기를 하야, 마누라 시켜 밥 얻어오면 고초장 아니 얻어왔다고 담뱃대로 때려도 보고. 흥보가 이렇게 풍마우습(風磨雨濕-바람과 비에 시달림)을 겪을 제, 어떻게 되겄느냐?
그렁저렁 성현동(聖賢洞) 복덕촌(福德村)을 당도했는데, 일간 초옥이 비었거늘, 그 동네 사람들이 흥보 내외를 인권(引勸-
이끌다)하야 거다가 몸을 잠시 의탁하여 있을 적에, 흥보 내외 금실은 좋던가. 자식들을 낳았으되, 깜부기 하나 없이 아들만 똑 구 형제를 조롯이 낳았겄다. 권솔은 많고 먹을 것이 없어 노니, 흥보 자식들이 배가 고파 노니, 밥을 달라, 떡을 달라, 저그 어머니를 조르는데, 이런 가관이 없던가 보더라. 한놈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배 고파 나 죽겠소. 밥 좀 주오, 밥 좀 주오. 또 한 놈 나앉으며 어머니, 나는 거 호박 시리떡 좀 하여 주시오. 그놈이 거 두 가지로 답넨다. 따수면 따수아도 달고, 식으면 식은 대로 호박 시리떡이 달지요. 또 한놈 나앉으며 어머니, 나는 거 육계장국에다가 허연 쌀밥 좀 말아주시오. 또 한놈 나앉더니마는, 어머니, 나는 거 영계탕, 생치(生雉)구이, 어만두, 육만두, 두루 산적 좀 해 주시오, 먹어볼라요. 어따, 그놈, 입맛도 안다. 또 한놈 나앉으며 압따, 그놈들이 음식타령을 하여 노니까 속이 니웃니웃하여 죽겠구려. 나는 아무 것도 말고, 우유차나 한 그릇 뜨끈뜨끈하게 끓여 주시오. 아이고, 이놈아, 나는 우유차 이름도 모린다. 흥보 큰아들놈이 썩 나앉더니마는, 어머니. 아이고, 이놈아. 너는 왜 코 안 뚫은 코동부사리 목성음으로 어미를 부르느냐? 어머니 아부지 공론하고 날 장가 좀 들여 주시오. 어머니 아버지는 거 손자도 안 늦어가요? 흥보 마누라, 이 말을 듣더니마는,

[진양] 어따, 이놈아, 야, 이놈아, 말 듣거라. 우리가 형세가 있고 보면 네 장개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헐벗기고 어린 너희들을 벗기겄느냐? 못 먹이고 못 입히는 어미 간장이 불이난다. 이놈들.

 

2. 흥보가 놀보집에 가서 전곡을 얻으러 가는 대목

[잦은몰이]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간다. 서리 아침 추운 날, 팔짱 끼고 옆걸음 쳐 이리저리 건너갈 제, 혼자말로 군담헌다. 여러해 못 본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전곡(돈이나 곡식)간에 주시려나, 몽둥이로 때리려나. 이리 생각, 저리 근심, 만단 의심 건너간다.

[아니리] 놀보 집을 당도하니, 놀보 하인 마당쇠가 우르르르 나오더니, 아이고 이 작은서방님 아니시오. 그동안 어떻게 지냈셨소? 오, 나는 그대로 지냈다마는, 너 고생이 어떻느냐? 그러고 큰서방님 성질은 전과 좀 어떠냐? 큰서방님이요? 말씀도 마시오. 전에 서방님 계실 때보단 성질이 장리(長利-훨씬)나 더 솟았습네다. 장리가 더 솟다니? 그전에 서방님 계실 때며는 거 제향(祭享)을 모시면 걸게 장만하고 그러더니마는, 지금은 제향을 모시면 대전(代錢)으로 바칩네다. 대전으로 바치다니? 돈에다 붓으로 쓰제요. 이것은 고기요, 저것은 밥이요, 이건 떡이요, 술이요, 식혜요, 어동육서(魚東肉西), 홍동백서(紅東白西), 좌포우혜(左脯右醯)요, 쏵 써가지고 울목에다가 줄느런히 늘어놨다가, 새벽이면 영천수 맑은 물에 쏵 씻어서 뀀지다 꿰베립네다. 아니, 그럼, 여태 선영(先塋-조상)을 굶겼더란 말이냐? 그렇지마는 내가 여꺼지 왔다가 형님을 아니 뵈옵고 갈 수도 없고. 어쩌면 좋으까? 안에를 들어갔다 나갔다 한참 이리 할 적에, 놀보가 영창(映窓)을 가만히 바라보니 웬 그림자가 알른알른 하지. 밖을 딱 내다본즉 제 동생 흥보가 왔거늘, 에께, 이놈이 왔구나. 필연 이놈이 나를 무얼 달라든지 무얼 얻으러 오든지, 나를 괴롭게 하러 온 놈이니, 내가 미리 앞장원(-壯元)을 칠밖에(남보다 먼저 손을 쓰는 일). 개동(開東) 군령(군대에서 이른 새벽에 내리던 군령)에 도둑 지킨 기침을 썩 내가지고, 담뱃대로 재떨이를 부서지게 깨트리며, 에헴, 에헴. 이런 때는 어느 놈이 날다려 무얼 달라든지, 무얼 얻으러 왔든지, 나를 괴롭게 하러 온 놈이 있으면, 이놈, 능지처참을 내리라. 이런 사람 같으면 제사(諸事-모든 일)가 빗났으니 썩 나올 일인데, 빌면 줄 줄 알고 빌러 한번 들어가 보는데, 우루루루루루루 쫓아 들어가 영창 밑에 엎지며, 아이고 형님, 형님 동생 소인 문안이요. 놀보가 영창을 드르르르르 열며, 의관을 반듯이 쓰고, 게 뉘시오? 아이고, 형님 동생 흥보로소이다. 흥보, 흥보? 작년에 쟁기 지고 도망한 놈은 청보요, 또 괭이 지고 도망한 놈은 흥보였다. 흥보, 흥보? 금시초문인데? 나 과연 모르겠소. 아이고, 형님. 형님 함자는 놀자 보자요, 아우 이름은 흥보 아니요, 형님. 여보시오, 나는 오대차 독신으로 내려온 줄을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데, 날보고 형님이라니? 당신 큰 망발을 해도 분수가 있지. 당신 길 잘못 들었소. 이 넘엣동네로 가서 물어 보시오. 흥보 기가 막혀, 아이고 형님.

 

 

3. 흥보가 놀보 마누라에게 주걱으로 맞는 대목

[아니리] 어찌 다급해 놨던지 안으로 쫓겨서 막 들어가던가 보더라. 그때에 놀보 마누라가 부엌에서 밥을 채리다가 가만히 들으니 밖에서 웬 사람 죽이는 소리가 나지. 들어본 즉 저의 시아재 흥보가 매를 맞거늘, 필연 매 맞고는 안으로 들어올 줄로 짐작하고, 밥 채리던 주걱을 들고 포수 고라니 목 잡듯 중문에 와서 딱 잡고 섰을 적에, 흥보가 울며 들어오것다. 아이고, 아짐씨, 형수씨, 사람 좀 살리시오. 놀보 마누란즉 놀보보다 성질이 장팔(丈八)이나 더 솟것다. 아재배암인지, 동아배암인지 까딱하면 돈 달라, 쌀 달라, 성가시러 못 살것구만. 돈 갖다 맽겼던가? 또 쌀 갖다 맽겼어? 아나 돈, 아나 밥. 밥 채리던 주걱으로 뺨을 영산(무당의 상) 나드기(신이 오른 무당) 징 치듯 탁 붙여 노니, 흥보가 뺨을 맞고 가만히 만져 보니 밥티가 들이앵겼구나. 그 통에라도 밥티를 떼다 입에다 넣으며, 아이고 형수씨, 그 주걱에 밥 많이 묻혀서 성한 이 뺨 좀 마저 때려 주시오.

[진양] 뺨을 맞고 생각을 하니, 하늘이 빙 돌고 땅이 툭 꺼지는 듯 분하고 원통하여, 아이고, 아짐씨, 형수가 시아재 뺨 치는 법은 고금천지 첨 보았네. 형님이 나를 죽이든지 살리든지 그는 한이 없지마는, 이 지경이 웬일이냐. 어서 나를 살지중치능지(殺之重治凌遲-죽을  만큼 엄하고 무거운 벌로 다스려서)를 하야 아주 박살 죽여 주시오. 형수씨. 어써 빨리 죽여 주면 염라국을 들어가서 부모님을 뵈옵거든 세세원정(細細原情-원통한 갖가지 사정)을 아뢰련마는, 어찌 하야서 못 죽는거나. 지리산 호랑아, 박흥보 물어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하고 매 맞기도 내사 싫다. 고추가리 먹은 사람처럼 후후 불며 저의 집으로 건너간다.

 

4. 흥보가 박을 타는 대목

[아니리] 흥보가 지붕으로 올라가서 박을 톡톡 튕겨 본즉 팔구월 찬 이슬에 박이 꽉꽉 여물었구나. 박을 따다 놓고, 흥보 내외 자식들 데리고 톱을 걸고 박을 타는데,

[진양] 시르렁 실근, 톱질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그어 주소. 이 박을 타거들랑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통만 나오너라. 평생에 밥이 포한(抱恨)이로구나. 에이 여루 당그어 주소. 시르르르르르르르. 큰 자식은 저리 가고, 둘쨋놈은 이리 오너라. 우리가 이 박을 타서, 박속일랑 끓여 먹고, 바가지는 부자집에 가 팔어다 목숨 보명(保命) 살아나자. 에이 여루, 톱질이로구나. 시르르르르르르. 여보소 마누라. 예. 톱소리를 어서 맞소. 톱소리를 맞자 한들 배가 고파 못 맞겠소. 배가 정 고프거든 허리띠를 졸라 매고 기운차게 당겨 주소. 시르렁 실근 시르렁 실근 당겨 주소.

[휘몰이]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식삭 시르렁 시르렁 실근 실근 식삭 실근 실근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시르렁 식삭 식삭.
[아니리] 박을 툭 타놓고 보니 박통 속이 훼엥. 아, 이거 나간 놈의 집구석이로구나여. 박속은 어느 놈이 다 파 가버리고 껍덕만 갖다 여 붙여놨네여. 박속 긁어 간 놈보단 박 붙여 논 놈의 재주가 더 용키는 용쿠나여. 한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웬 궤 두짝이 쑥 불거지거늘, 아, 이거 보게여. 어느 놈이 박속은 다 긁어 가고 염치가 없으니깐 조상궤(
조상의 유물을 담은 궤짝)를 갖다 넣어 놨네여. 이거 관가에서 나오면, 알고보면 큰일난다. 이거 갖다 내버려라, 이거. 흥보 마누라가 가만히 보더니마는, 여보 영감. 죄 없으면 괜찮습니다. 좀 열어 봅시다. 아, 요새 여편네들이 통이 너럭지(아가리가 넓은 질그릇)만이나 크다니까. 이 사람아, 이 궤를 만일 열어봐서 좋은 것이 나오면 좋으데, 만일 나쁜 것이 나오면 내뺄 터인데, 자네 내 걸음 따라오것는가? 자식들 데리고 저 사립밖에 가 서소. 그래갖고, 내가 이 궤를 열어봐서, 좋은 것이 나오면 손을 안으로 칠 터이니 들어오고, 만일에 낮은 것이 나오면 손을 밖으로 내칠 터이니 내빼소 내빼. 흥보가 궤 자물쇠를 가만히 보니, 박흥보씨 개탁(開坼-뜯어보라)이라 딱 새겼지. 흥보가 자문자답으로 궤를 열것다. 날보고 열어 보랬지? 암은, 그렇지. 열어 봐도 관계찮다지? 암은, 그렇고 말고. 궤를 찰칵찰칵, 번쩍 떠들러 놓고 보니 어백미(御白米) 쌀이 한 궤가 수북. 또 한 궤를 찰칵찰칵, 번쩍 떠들러 놓고 보니 돈이 한 궤가 수북. 탁 비워 놓고 본께 도로 하나 수북. 돈과 쌀을 비워 놓고 보니까 도로 수북. 흥보 마누래 쌀을 들고 흥보는 돈을 들고 한번 떨어 붓어 보는데, 휘몰이로 바짝 몰아놓고 떨어 붓것다.

[잦은 휘몰이]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짝을 톡톡 떨어 붓고 나니 도로 수북. 톡톡 떨어 붓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과 도로 하나 가뜩하고, 눈 한번 깜잭이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과 도로 하나 가득.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비어 내고. 아이고, 좋아 죽겄다. 팔 빠져도 그저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일년 삼백육십날만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팔 빠져도 그저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부어라.

[아니리] 어찌 떨어 붓어 놨던지 쌀이 일만구만석이요, 돈이 일만구만냥이라. 나도 어쩐 회계인지 알 수가 없지. 흥보가 궤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깐 노란 엽전 한 궤가 새리고 딱 있지. 쑥 빼들고는 흥보가 좋아라고 한번 놀아 보는데,

[중중몰이]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나 좋을씨고. 얼씨고 절씨고 지화자 좋구나, 얼씨고나 좋을씨고. 돈 봐라, 돈 봐라, 얼씨고나 돈 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생살지권(生殺之權-살리고 죽이는 권리)을 가진 돈, 부귀 공명이 붙은 돈. 이 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고나 돈 봐라. 야, 이 자식들아, 춤 춰라. 어따, 이놈들, 춤을 추어라. 이런 경사가 어디가 있느냐? 얼씨고나 좋을시고. 둘쨋놈아 말 듣거라. 건넌말 건너가서 너그 백부님을 오시래라. 경사를 보아도 형제 볼란다. 얼씨고나 좋을시고. 지화자 좋을시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 박흥보를 찾아오오. 나도 내일부터 기민(饑民)을 줄란다.(굶주리는 사람들에게 곡식을 거저 나누어 주겠다) 얼씨고나 좋을시고. 여보시오 부자들, 부자라고 자세(藉勢-뽐냄)말고 가난타고 한을 마소. 엊그제께까지 박흥보가 문전 걸식을 일삼더니, 오늘날 부자가 되니, 석숭이(중국 진나라 때의 큰 부자)를 부러하며 도주공을 내가 부러워할거나? 얼씨고 얼씨고 좋을시고. 얼씨고나 좋구나.

 

5. 놀보가 흥보집에 오는 대목

[아니리] 이렇게 부자가 되얐지. 그때에 저 건넌마을 놀보는 제 동생 흥보 잘됐단 말을 풍편에 듣고 배를 앓는데, 이런 가관이 없지. 아, 이놈이 참으로 부자가 되얐는가, 거짓말로 헛소문이 났는가? 이놈이 참으로 부자가 되얐으면 내가 이놈의 재산을 어찌야 떨어 먹을고? 하고 밤낮주야로 배를 앓다가, 하루는, 어라, 내가 그놈한테를 건너가 보고 와야 속이 시원하겄어. 흥보 사는 곳을 갈 양으로 채림을 채리는데, 큰 통량갓 쓰고, 담뱃대 한발 되는 놈 썩 꼬나물고, 도복 입고, 차잠차잠 아그똥하니 이놈이 건너가지. 흥보 사는 곳을 당도하니, 예 있던 수숫대 움막은 간 곳 없고 고루거각(高樓巨閣-웅장한 집)이 웅장하니 썩 들어섰지.
놀보 깜짝 놀래, 악, 이것이요 흥보란 놈 집구석이냐, 어느 서울 재상이 시골로 낙향을 하였나? 흥보 문전 당도하야 문패를 바로보니, 호주(戶主)에다 박 흥보라 딱 새겼지. 에께, 이놈이 참으로 부자가 되얐네여. 요놈의 집구석을 이거 어쩌꼬요? 부쇠를 탁 쳐대서 불을 확 질러 부러, 이거? 그나저나, 내가 한번 불러 볼밖에. 에헴, 에헴, 너 게 안에 흥보란 놈 게 있느냐? 그때의 흥보는 친구들과 사랑에서 바둑을 땅땅 두고 있을 적에, 저의 형 음성이 나니 버선발로 우르르르르 쫓아나와서 절하며, 형님, 그동안 문안이 어떠십니까? 문 안이고 문 밖이고 너 요새 성하냐, 이녀석? 형님, 제가 노마(奴馬)를 진즉 보낼 것인데 여꺼지 도보를 이렇게 하셨으니, 대단 형님 죄송합니다. 마잇, 네 이놈. 네가 내게 노마 보낼 놈이여, 이놈? 그논 내 집 뽄으로 잘 꾸며놨네요. 네 이놈, 이 집 내 집하고 바꾸자, 이놈아. 형님 처분하라 하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그래, 들어가자. 안에를 들어가서 사랑에다 뫼셔 놓고, 그때에 흥보가 저그 마누라 전에 들어가 갖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건너오셨으니 어서 나가서 인사 여쭈시오. 그때의 흥보 마누라는 전사(前事)에 하던 일을 곰곰 생각을 하니 시숙이라고 한자리에 앉아서 대면할 마음이 없지마는, 가장의 명령을 복종하야 놀보 봐라는 듯이 한번 꾸미고 나오것다.

[중몰이] 흥보 마누라가 나온다. 흥보 마누라가 나오는데, 전일에는 못 먹고 못 입고 굶주리던 일을 생각하니, 지금이야 돈이 없나, 쌀이 없나, 은금보화가 없나, 녹용, 인삼이 없나. 며느리들께 호사를 많이 시키고, 흥보 마누라도 한삼 세모시에다 당청엣물을 포로소롬하게 놓아, 주름은 짧게 잡고, 말은 널리 달아, 외로 돌려서 걷어잡고 며느리들께 좌우로 거느리고 아장거리고서 나오더니,

[아니리] 시숙님 뵈옵시다 하고 큰절을 하니, 이런 사람 같으며는 제수가 인사를 하니까 뽈딱 일어나서 맞절을 해야 도리가 옳은데, 발을 땅그랗게 올려 개고, 담뱃대 진 놈 썩 꼬나 물고, 야, 그거, 제수씨가 나갈 적에 보고 인자 본께 거 미꾸리가 용 됐구나, 거? 때를 훨씬 벗었는데? 그때에 흥보는 들은 체 본 체도 아니하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모처럼 건너오셨으니 어서 안에 들어가서 형님 점심상 준비하시오. 그때에 흥보 마누라가 본래 얌전하던가 보더라. 며느리들 다리고 부엌에 들어가서 놀보 술상을 꾸몄는데 꼭 이렇게 꾸몄겄다.

 

6. 놀보가 제비 다리 부르뜨리는 대목

[아니리] 대체 이 수(운수) 사나운 제비 한쌍이 떠들어와서 처마 끝에다 성주를 하니, 놀보 보고 좋아라고, 얼씨구나, 내 제비 왔구나, 그렇지. 저 제비가 멋기가 있는 제비로구마. 좋은 집 다 버리고 내 집에 와서 성주하는 것이 참 고맙다. 어서 새끼 많이 까 가거라. 저 제비 거동을 보아라. 흘지양지 하더니마는 알을 낳기 시작하는데, 놀보란 놈이 제비집 밑에다가 초석노(초석으로 만든 줄)를 딱 달아놓고 비비면서, 어디 시조란지, 미국 장단에다가 청국 시조를 썩 내가지고, 그 제로 한번 이놈이 제비알 까는 족족 점고를 하는데, 아아, 제비알을 만져 보자, 이이이. 옳다, 또 하나 깠구나. 어흐흐어 어이. 옳다, 또 하나 깠구나. 어찌 만져쌓던지, 조독(爪毒-손톱 독)이 올라서 싹 곯아빠져 버리고, 다만 한 마리 남은 것이 날기 공부하느라고 파닥 파닥 파닥 파닥 하니, 떨어지거라, 떨어지거라, 떨어지거라. 도로 부르르르르르 기어 올라가니, 에끼, 이놈을 내가 그냥 두었다가는 실물(失物)을 당할테니, 내가 자장작기(自將作技-스스로 꾀를 부림)할 밖에는 수가 없다. 제비 새끼를 잡아내야 무르팍에다 대고 부지는데, 짹짹짹짹짹. 짹이고 뭣이고 가만 있거라, 이놈의 자슥아. 다리를 잘칵 부질러서 마당에다 훅 집어던져 놓고, 우루루루 쫓아내려가서 제비 새끼 주워 들고, 아이고, 불쌍타, 내 제비야. 여보, 마누라. 여 제비가 다리가 부러졌네여. 우리, 제비 다리 이어주세. 된장 떼어다 붙이고 헝겊으로 칭칭 동여서 제비집에 들이치며, 어서, 어서, 죽지 말고 살아나서 박씨 하나 물어 오니라, 잉. 저 제비 거동을 보아라. 놀보 원수를 갚을 제비어든 죽을 리가 있겠느냐. 수일이 되더니 다리가 낫아 날기 공부를 하는데,

[진양] 떴다, 저 제비 거동을 보아라. 거중으로 둥둥 떠 이리저리 날아보고, 구만 장천에 높이 떠서 배도 쓱 싯쳐 보고, 빨랫줄에가 날아앉더니 한들한들 놀아 보니, 놀보가 보고 좋아라고, 얼씨고, 내 제비 살았구나. 박씨 하나만 물어다 주면 성한 다리를 마저 부지러 주마. 저 제비 거동을 보아라. 무엇이라고 지지(知之) 지지(知之) 하더니마는, 만리 강남을 펄펄 날아 들어간다.

 

 

7. 놀보가 박을 타는 대목

[휘몰이]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실근 식삭 식삭 식삭 식삭. 박이 반쯤 벌어가니 박통 속에서 맹자(孟子)라, 맹자견(孟子見) 양(梁) 혜왕(惠王)하신대, 왕왈(王曰) 수 불원천리이내(不遠千里而來)하시니.(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가니, 왕이 말하기를 '선생이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주시니')

[아니리] 이거 박통 속이 아니라 서당 속이시여. 박이 쩍 벌어지더니마는 노인 한분이 나오는데,

[휘몰이] 두룸박 이마빡, 송곳턱, 주먹 상투, 빈대코, 똥오줌을 팔팔 싸 구린내가 진동한다. 네 이놈, 놀보놈아. 네 할애비는 정월쇠, 네 할미는 이월덕이, 네 애비는 마당쇠, 네 에미는 삼월덕이, 세대(世代)로 각댁 종일러니, 병자년에 도망하야 부지거처(不知去處-간 곳을 모르다) 몰랐더니, 강남서 들은즉 여기서 산다기로, 너를 만나러 여 왔으니, 네 계집 자식, 당장 이놈, 상전 전에 인사 못 드리겄느냐, 이 때려죽일 놈아? 너 이놈, 그리고 오늘부터서 상전이라고 안 불러서는 이놈, 다리 몽둥이를 작신 꺾어 놀 것이다, 이놈.

[아니리] 놀보 기가 맥혀 곰곰 생각을 해보니, 선대(先代)의 증거가 없으니 상전 아니랄 수도 없고, 하릴없이 샌님 전에 비는데,

[중몰이] 비나니다, 비나니다, 상전님 전에 비나니다. 선대의 증거가 없으니 낸들 알 수 있나니까? 대전(代錢)으로 바칠 테니 아주 속량(贖良-노비가 몸값을 내고 양민이 됨)시켜 주오.

[아니리] 너 이놈, 그러면 얼마나 바칠래? 오백냥 드리지요. 어라, 이놈. 오백냥 갖고 너 같은 종놈을 사겄느냐? 만냥만 들여라. 아이고, 천냥만 그러면 드리겄습니다. 어라, 너같은 종놈을 데리고 무슨 말을 하겄느냐. 주머니를 하나 내야주면서, 어라, 전곡간에 이 주머니만 그냥 채워 오너라. 늙어 말년에 갖고 가기도 귀찮허다. 놀보가 주머니를 딱 받아들고 본즉, 쌀이 들면 불과 서너되쯤 들게 생겼고, 돈이 들면 불과 사오십냥쯤 들게 생겼으니,

[중몰이] 놀보가 보더니 좋아라고, 주머니를 추켜들고 돈 궤 앞에가 앉아서 닷냥을 넣어도 휑, 백냥을 넣어도 간 곳이 없고, 오백냥을 넣어도 간 곳이 없구나. 아이고, 이 주머니가 새는구나. 쌀두지로 쫓아가서 열말을 집어넣어도 뻥. 백석을 넣어도 간 곳이 없고, 오백석을 넣어도 간 곳이 없으니, 헛간으로 쫓아가서 살림살이 가산 등물을 집어넣는 대로 간 곳이 없으니, 놀보가 기가 맥혀 주머니를 추켜들고 벌벌벌 떨면서 말을 한다.

[아니리] 아이고 샌님. 이 주머니가 무슨 주머니요? 오, 그건 능청낭이라 하는 주머니다. 아이고, 여보시오, 이 주머니 사람 많이 상하게 생겼소. 아니야. 그 주머니가 사람 잘 된 사람은 더 잘되게 맹글고, 못된 놈만 못쓰게 상하는 주머니다. 어라, 너무 많이 갖고 왔는가부다. 늙어 말년에 갖고 가기도 귀찮허다. 또 올텐데 뭐. 아이고 샌님, 또 언제 오실라요? 오냐, 나 종종 심심하면 찾아올테니 많이 여그다 채워 둬라, 잉. 주머니를 갖고 두어 걸음 가더니 인홀불견 간 곳이 없것다. 역군들이 어이없어 우두커니 섰으니, 여보소 역군들, 은금보화가 시방 변화하야서 나를 지기 떠보자 그런 것이니, 둘째 통에는 인자 틀림없이 은금보화 들었네. 염려 말고 박 타세. 역군들이 또 달려들어서 한통 또 타는데,

 

8. 놀보, 흥보가 화목하는 대목

[아니리] 그때의 흥보가 물을 떠다가 저의 형님 전에 드리고, 사족(四足)을 모두 주물러서 일어내켜 노니, 놀보가 그제야 인자 겨우 정신이 돌아와서, 아이고, 동생. 아이고 형님. 곤욕이 심하셨지요? 아이고, 이 사람아, 동생. 내가 전사(前事)에 모든 허물되고 잘못된 일을 동생 부디 용서하소.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오? 제가 잘못되야 그리 된 일이지요. 형님, 제 살림도 많사오니 서로 인자 절반씩 반분(半分)하야 한집에서 우애하고 삽시다, 형님. 그러세마는, 동생 볼 면목이 없네.

[엇중몰이] 그때의 박놀보는 개과천선을 한 이후에, 흥보 살림 반분하여 형제간에 화목을 하고, 대대로 자식들을 교훈시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함을 천추 만세 전하더라. 그 뒤야 누가 알리, 더질더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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