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청 전
어린아이 달래다가 횡덩그런 빈 방안에 태백산 갈가마귀 게발 물어 던진듯이 홀로 누웠으니 마음이 온전하리. 벌떡 일어서더니 이불도 만져 보며 베개도 더듬으며, 예덥던 금침은 의구히 있다마는 독수공방 뉘와 함께 덮고 자며, 농짝도 쾅쾅 치며, 바느질 상자도 덥석 만져 보고, 빗던 빗접도 핑등그르리 던져 보고, 받던 밥상도 더듬더듬 만져 보고, 부엌을 향하여 공연히 불러도 보며, 이웃집 찾아가서 공연히,
"우리 마누라 예 왔소?"
물어도 보고, 어린아이 품에 품고,
"너희 어머니 무상하다. 너를 두고 죽었지. 오늘은 젖을 얻어 먹었으나 내일은 뉘 집에 가 젖을 얻어 먹여 올까? 애고 애고, 야속하고 무상한 귀신 우리 마누라를 잡아갔구나."
이처럼 애통하다가 풀쳐?생각하되,
'사자(死者)는 불가부생(不可復生)이라 하릴없거니와 이 자식이나 잘 키워내리라.'
하고, 어린아이 있는 집을 차례로 물러 동냥젖을 얻어 먹일 적에 눈 어두워 보든 못하고 귀는 밝아 눈치로 가늠하고 앉았다가, 마침 날이 들 적에 우물가에서 들리는 소리 얼른 듣고 나서면서,
"여보시오 마누라님, 여보 아씨님네, 이 자식 젖을 좀 먹여 주오. 나를 본들 어찌하며 우리 마누라 살었을 제 인심으로 생각한들 괄시하며, 어미 없는 어린 것인들 아니 불쌍하오? 댁의 귀하신 아기 먹이고 남은 젖 한 통 먹여 주오."
하니 뉘 아니 먹여 주리. 또 육 칠월 김매는 여인 쉴 참 찾아가서 애근하게 얻어 먹이고, 또 시내가의 빨래하는 데도 찾아가면 어떤 부인은 달래다가 따뜻이 먹여 주며 후일도 찾아오라 하고, 또 어떤 여인은 말하되,
"이제 막 우리 아기 먹었으니 젖이 없노라."
하여 심청이 젖을 많이 얻어 먹인 후에, 아이 배가 불룩한즉 심봉사 좋아라고 양지바른 언덕 밑에 쪼그려 앉아 아기를 어룰 제,
"아가 아가, 자느냐? 아가 아가 웃느냐? 어서 커서 너의 모친같이 현철하여 효행있어 아비에게 귀함을 보여라."
어느 조모 있어 보며 어느 외가 있어 맡길손가. 하도 볼 사람 없으니 아이 젖을 먹여 뉘이고 새새이 동냥할 제, 삼베 전대(錢帶) 두동지어 한 머리는 쌀을 받고 한 머리는 벼를 받아 모이고, 한달 육장 다니며 전전이 한푼 두푼 얻어 모아 아이 암죽거리로 갱엿 푼어치 홍합도 사고, 이렇듯이 지내며 매월 삭망 소대기를 염려없이 지내더니, 또 심청이는 장래 귀히 될 사람이라 천지귀신이 도와주고 여러 부처 보살이 음조(蔭助)하여 잔병 없이 자라나 제 발로 걸어 잔주접을 지내고, 무정세월약류파(무정세월약류파)라. 어느덧 육칠세라. 얼굴이 국색(國色)이요, 인사가 민첩하고, 효행이 출천하고, 소견이 탁월하고, 인자함이 기린이라. 부친의 조석 공양과 모친의 제사를 의법대로 할 줄을 아니, 뉘 아니 칭찬하리요.
하루는 부친께 여쭈되,
"미물 짐승 가마귀도 공림 저문날에 반포할 줄을 아니 하물며 사람이야 미물만 못 하오릿가? 아버지 눈 어두신데 밥 빌러 가시다가 높은 데 깊은 데와 좁은 길로 천방지방 다니다가 엎어져 상하기 쉽고, 만일 날 궂은날 비비람 불고 서리친 날 추워 병이 나실가 밤낮으로 염려되오니, 내 나이 칠팔세라 생아육아(生兒育兒) 부모은덕 이제 봉양 못하면 일후 불행하신 날에 애통한들 갚사오릿가. 오늘부터 아버지는 집이나 지키시면 내가 나서서 밥을 빌어다가 조석근심 덜게 하오리다."
심봉사 웃고 하는 말이,
"네 말이 기특하다. 인정은 그러하나 어린 너를 내보내고 앉아 받아먹는 마음 내 어찌 편하리요. 그런 말 다시 말라."
또 여쭈오되,
"자로(子路)는 현인으로 백리에 부미(負米)하고, 제영은 어린 여자로되 낙양 옥중에 갇힌아비 제 몸을 팔아 속죄하니 그런 일 생각하면 사람이 고금이 다르리까. 고집하지 말으소서."
심봉사 옳게 여겨,
"기특하다 내 딸이야 효녀로다 내 딸이야. 네 말대로 그리하여라."
심청이 이날부터 밥 빌러 나설 제, 먼 산에 해 비치고 앞 마을에 연기나면 헌 베중의(布中衣) 대님치고, 말기만 남은 베치마 앞섶 없는 저고리를 이렁저렁 얽어메고 청목휘양(靑木揮項) 둘러쓰고, 버선 없이 발을 벗고 뒷축 없는 신을 끌고, 헌 바가지 옆에 끼고, 단지 노끈 매어 손에 들고 엄동설한 모진 날에 추운 줄을 모르고 이집 저집 문앞 문앞 들어가서 애근히 비는 말이,
"모친은 세상 버리시고 우리 부친 눈 어두어 앞못보는 줄 뉘 모르시리까. 십시일반이오니 밥 한 술 덜 잡수시고 주시면 눈 어두운 나의 부친 시장을 면하겠소."
보고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감격하여 그릇 밥, 김치, 장 아끼지 않고 주며, 혹은 먹고 가라 하면 심청이 하는 말이,
"추운 방의 늙은 부친 응당 기다릴 것이니 나 혼자 먹사오리까. 어서 바삐 돌아가서 아버지와 함께 먹겠나이다."
이럭저럭 얻은 밥이 두세 집 얻으면 족한지라, 속히 돌아와서 방문 앞에 들어오며,
"아버지 춥지 않소? 아버지 시장하시지요. 아버지 기다렸소? 자연히 더디었소."
심봉사가 딸을 보내고 마음을 둘 데 없어 탄식하더니 소리 얼른 반겨 듣고,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두 손 덥석 잡고,
"손시럽지?"
입에 대고 훌훌 불며, 발도 차다 어루만지며, 혀를 끌끌차며, 눈물지며,
"애고 애고, 애닯도다 너의 모친. 무상하다 나의 팔자야. 너로 하여금 밥을 빌어 먹고 살잔말인가. 애고 애고, 모진 목숨 구차히 살아서 자식 고생시키는구나."
심청의 극진한 효성 부친을 위로하되,
"아버지, 그 말씀 마오. 부모를 봉양하고 자식의 효도를 받는 게 천리(天理)에 떳떳하고 인사에 당연하니 너무 걱정 마시오. 진지나 잡수시오."
하며 저의 부친 손을 잡고,
"이것은 김치요. 이는 간장이오. 시장하신데 많이 잡수시오."
이렇듯이 공양하며 춘하추동 사시절 없이 동네 걸인 되었더니, 한 해 두 해 네대 해 지나가니, 재질이 민첩하고 침선이 능란하니 동네 바느질로 공밥 먹지 아니하고 삯을 주면 받아 모아 부친 의복 찬수하고, 일 없는 날은 밥을 빌어 근근히 연명하여 가니, 세월이 물처럼 흘러 십 오세에 당하더니, 얼굴이 추월(秋月)같고, 효행이 태기하고, 동정이 안혼하여 인사가 비범하니 천생려질(天生麗質)이라. 가르쳐 행할소냐. 여자중의 군자요 새 중의 봉황이라.
이러한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니 하루는 월편 무릉촌 장승댁 시비 들어와 부인 명을 받아 심소저를 청하거늘, 심청이 부친께 여쭈되,
"어른이 부르신즉 시비와 함께 가 다녀오겠습니다. 만일 가서 더디어도 잡수시던남은 진지, 반찬, 수저, 상을 보아 탁자 위에 두었으니 시장하시거든 잡수시오. 부디 가 오기를 기다려 조심하옵소서."
하고 시비를 따라갈 제, 시비 손 들어 가리키는 데 바라보니, 문 앞에 심은 버들 엄율한 시상촌(柴桑村)을 전하여 있고, 대문 안에 들어서니 좌편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라 깨고, 우편에 섰는 반송(盤松) 청풍이 건듯 부니 늘은 용이 꿈틀거리는듯, 중문 안에 들어서니 창 앞에 심은 화초 일난초 봉미장은 속잎이 빼어나고, 고루 앞의 부용당(芙蓉堂)은 백구가 흔흔한데 하엽이 출수소의젼으로 높이 떠서 둥실 넙적, 징경이는 쌍쌍, 금붕어 둥둥, 안 중문 들어서니 가사(家舍)도 굉장하고 수호문창도 찬란한데, 반백(半白)이 넘은 부인 의상이 단정하고 기부(肌膚)가 풍염하여 복이 많은지라. 심소저를 보고 반겨하여 손을 쥐며,
"네가 과연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도 같다."
하시며 자리를 주어 앉힌 후에 가긍함을 위로하고, 자세히 살피니 천상의 봉용국색(봉容國色)일시 분명하다. 염용하고 앉은 거동 백석청강(百石淸江) 새 비 뒤의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 보고 놀래는듯 황홀한 저 얼굴은 천심(天心)에 돋은 달이 수면에 비치었고, 추파를 흘리뜨니 새벽 빛 맑은 하늘에 경경(耿耿)한 샛별같고, 양협(兩頰)의 고운 빛은 노양연봉추분홍(老陽連峯秋分紅)의 부용(芙蓉)이 새로 핀듯, 청산 미간의 눈썹은 초생달 정신이요, 삼삼녹발은 새로 자란 난초같고, 재약쌍쌍빈은 매미 귀밑이라. 입을 벌여 웃는 양은 모란화 한송이가 하릇밤 비 기운에 피고자 벌어지는듯, 호치(皓齒)를 열어 말을 하니 농산의 앵무로다. 부인이 칭찬 왈,
"네 전세(前世)를 모르느냐? 분명히 선녀로다. 도화동에 적하(謫下)하니 월궁에 놀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오늘 너를 보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무릉촌에 내가 있고, 도화동에 네가 나니, 무릉촌에 봄이 들고 도화동에 개화로다. 탈천지지정기(奪天地之精氣)하니 비범한 너로구나. 내 말을 들어라. 승상이 일찍 기세(棄世)하시고 아들이 삼형제라. 황성에 여환(旅宦)하여 다른 자식 손자 없고, 슬하에 재미 없어 눈앞에 말벗 없고, 각방의 며느리는 혼정신성(昏定晨省) 한 연후에 다 각기 제 일하니 적적한 빈 방안에 대하나니 촛불이요, 보나니 고서(古書)로다. 너의 신세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 저렇듯 궁곤하니 어찌 아니 불쌍하랴. 나의 수양딸 되면 여공(女功)이며 문산(文算)을 학습하여 기출(己出)같이 길러내어 말년 재미 보려하니 네 뜻이 어떠하뇨?"
심소저 일어나 재배하고 여쭈되,
"명도기구하여 낳은 지 초칠일 안에 모친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매 눈어둔 나의 부친 동냥젖 얻어 먹여 겨우 살았으니 모친의 얼굴도 모르매 궁천지통 끊일 날이 없삽기로 나의 부모 생각하여 남의 부모도 공경터니, 오늘 승상부인께옵서 권하신 뜻이 미천한 줄 헤지 않고 딸을 삼으려 하시니, 모친을 다시 뵈온듯 황송 감격하와 마음을 둘 곳이 전혀 없어 부인의 말씀을 좆자 하면 몸은 영귀(榮貴)하오나 안혼(眼昏)하신 우리 부친 조석공양과 사절 의복 뉘라서 이으리까. 구휼(救恤)하신 은덕은 사람마다 있거니와 ?지여날하여 난당 이별론이라. 부친 모시옵기를 모친 겸 모시옵고, 우리 부친 날 믿기를 아들 겸 믿사오니, 내가 부친곧 아니시면 이제까지 살았으며, 내가 만일 없어지면 우리 부친 남은 해를 마칠 길이 없사오며, 요조?의 사정 서로 의지하여 내 몸이 ?도록? 길이 모시려 하옵나이다."
말을 마치매 눈물이 옥면에 젖는 거동은 춘풍세우(春風細雨)가 도화에 맺혔다가 점점이 떨어지는 듯하니, 부인도 또한 긍칙하여 등을 어루만지면서,
"효녀로다 효녀로다, 네 말이여. 응당 그러할 듯하다. 노혼(老昏)한 나의 말이 미처 생각치 못하였다."
그렁저렁 날이 저물어지니 심청이 여쭈오되,
"부인의 착하신 덕을 입어 종일토록 모셨으니 영광이 만하기로 일력(日力)이 다하오니 급히 돌아가 부친이 기다리시던 마음을 위로코자 하나이다."
부인이 말리지 못하여, 마음에 연연히 여기사 채단과 피륙이며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와 함께 보낼 적에,
"너 부디 나를 잊지 말고 모녀간 의를 두면 노인의 다행이라."
심청이 대답하되,
"부인의 장하신 뜻이 미쳤으니 가르치심을 받자오리다."
절하여 하직하고 망연히 오더니라.
이때에 심봉사 홀로 앉아 심청을 기다릴 제 배고파 등이 붙고, 방은 추워 턱이 떨려지고, 잘 새는 날아 들고, 먼 데 절 쇠북소리는 들리니 날 저문 줄 짐작하고 혼자 하는 말이,
"내 딸 심청이는 무슨 일에 몰골하여 날이 저문 줄 모르는고. 주인에게 잡히어 못오는가? 저물게 오는 길에 동무에게 잠착(潛着?)한가?"
풍설(風雪)에 가는 사람 못보고 짓는 개 소리에 심청이 오는가 반겨 듣고, 무단할사 떨어진 옆 창에 와 풍설 섞여 부딪치니 심청이 온 자취 행여 긴가 하여 반겨 나서면서,
"심청이 너 오느냐?"
적막공정에 인적이 없었으니 헛분 마음 아득히 속았구나. 지팡막대 찾아 짚고 사립 밖에 나가다가 길이 넘는 개천에 밀친듯이 떨어지니, 면상에 흙빛이요 의복에 얼음이라. 뛴들 도로 더 빠지며 나오잔즉 미끄러져 하릴없이 죽게 되어, 아무리 소리친들 일모도궁(日暮途窮)하니 뉘라서 건져 주리.
진소위(眞所謂) 활인지불(活人之佛)은 곳곳마다 있는지라. 마침 이 때 몽운사 화주승이 절을 중창하려 하고 권선문(勸善文) 둘러메고 내려왔다. 청산은 암암하고 설월(雪月)은 돋아올 제 석경(石逕) 비낀 길로 절을 찾아가는 차에 풍편(風便) 슬픈 소리 사람을 구하라 하거늘, 화주승 자비한 마음에 소리 나는 곳을 찾아가더니, 어떤 사람이 개천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거늘, 저 중의 급한 마음 구절죽장(九節竹杖) 백골암상(백골암상)에 척척 던져 두고, 굴갓 수먹장삼 실띠 달린 채 벗어 놓고, 육날 미투리 행전 대님 버선 훨훨 벗어 놓고, 구두누비 바지 저고리 거듬거듬 휠씬 추고 월의을의 달려들어, 심봉사 곧추 상투 덥석 잡어 엇뜰우미야 건져 놓으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봉사 정신차려 묻는 말이,
"게 뉘시오."
하니, 중이 대답하되,
"몽운사 화주승이요."
"그렇지, 활인지불이로고. 죽은 사람 살려 놓으니 은혜 백골난망이라."
화주승이 심봉사를 업고 방안에다가 앉히고 빠진 연고를 물으니, 심봉사 신세를 자탄하다가 전후 말을 하니, 그 중이 봉사더러 하는 말이,
"불쌍하오. 우리 절 부처님은 영검(靈驗)이 많으옵셔 빌어 아니 되는 일이 없고, 구하면 응하나니 공양미 삼백석을 부처님께 올리옵고 지성으로 공경하면 정녕 눈을 떠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 천지만물을 보오리다."
심봉사 가세는 생각지 않고 눈뜬단 말에 혹하여,
"그러면 삼백석을 적어 가시오."
화주승이 허허 웃고,
"여보시오, 댁의 가세를 살펴 보니 삼백 석을 무슨 수로 하것소?"
심봉사 홧김에 하는 말이,
"여보시오, 어느 쇠아들놈이 부처님께 적어 놓고 빈말 하것소. 눈 뜨려다가 앉은뱅이 되게요? 사람만 없수이 여기는고. 염려 말고 적으시오."
화주승이 바랑을 펼쳐 놓고, 제일층 붉은 종이에 '심학규 백미 삼백 석이라' 적어 가지고 하직하고 간 연후에, 심봉사 중을 보내고 다시금 생각하니 시주쌀 삼백 석을 만들어낼 길이 없어, 복을 빌려다가 도리어 죄를 얻을 것이니, 이 일을 어이하리. 이 설움 저 설움 묵은 설움 햇 설움이 동무지어 일어나니 견디지 못하여 울음 운다.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망녕할사, 내 일이야. 천심이 지공(至公)하사 후박(厚朴)이 없건마는 무슨 일로 맹인이 되어 형세조차 간구하고, 일월같이 밝은 것을 분별할 길 전혀 없고, 처자같은 지정간(지정간)을 대하여도 못 보겠네. 우리 망처(亡妻) 살었더면 조석 근심 없을 것을, 다 커가는 딸 자식을 동네에 내놓아서 품을 팔고 밥을 빌어다가 근근히 호구하는 중에 공양미 삼백 석을 호기 있게 적어 놓고 백 가지로 생각한들 방책이 없구나. 빈 단지를 기우린들 한 되 곡식 바이 없고, 장롱을 수탐(搜探)한들 한 푼 전이 왜 있으리. 일간두옥(一間斗屋) 팔자 한들 풍우를 못 피커든 살 사람이 뉘 있으리. 내 몸을 팔자 하나 푼전 싸지 아니하니 나라도 사지 아니하랴거든, 어떠한 사람은 팔자 좋아 이목구비 완전하고 수족이 구비하여 부부해로하고 자손이 만당하고 곡식이 진진하고 재물이 영영(盈盈)하여 용지불간(用之不竭) 취지무궁(取之無窮) 그리운 것 없건마는, 애고 애고 내 팔자야, 나같은 이 또 있는가? 앉은뱅이 곱사등이 서럽다 한들 부모 처자 바로 보고, 말못하는 벙어리도 서럽다한들 천지만물 보아 있네."
한창 이처럼 탄식할 제 심청이 바삐 와서 저의 부친 모양 보고 깜짝 놀래어 발 구르면서 전신을 두루 만지며,
"아버지, 이게 웬 일이요? 나를 찾아 나오시다가 이런 욕을 보셨소? 이웃집에 가셨다가 이런 봉변을 당하셨소? 춥긴들 오죽 하며 분함인들 오죽 하리까.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압고 만류하여 어언간에 더디었소."
승상댁 시비 불러,
"부엌에 있는 나무로 불 한 부엌 넣어 주소."
부탁하고, 치마폭을 거듬거듬 걷워 잡고 눈물 흔적 씻으면서,
"진지를 잡수시오. 더운 진지 가져 왔소. 국물 먼저 잡수시오."
손을 끌어다가 가르치며,
"이것은 김치요, 이것은 자반이요."
심봉사 만면수색(滿面愁色), 밥 먹을 뜻 전혀 없었으니,
"아버지, 웬일이오? 어디 아파 그러신가, 더디 왔다고 이렇듯이 진노하신가?"
"아니로다. 너 알아 쓸데없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요? 부자간 천륜이야 무슨 허물 있으리까? 아버지는 나만 믿고, 나는 아버지만 믿어 대소사를 의론터니, 오늘날 말씀이 '너 알아 쓸데없다'고 하시오니 부모 근심은 곧 자식의 근심이라. 제 아무리 불효한들 말씀을 아니 하시니 제 마음에 섧사이다."
심봉사 그제야,
"내가 무슨 일을 너를 속이랴마는, 만일 네가 알게 되면 지극한 너의 마음에 걱정만 되겠기로 말하지 못하였다. 아까 너를 기다리다가 저물도록 아니 오기에, 하 갑갑하여 너를 마중나갔다가 길이 넘는 개천에 빠져서 거의 죽게 되었더니, 뜻밖의 몽운사 화주승이 나를 건져 살려 놓고 하는 말이 '공양미 삼백석을 진심으로 시주하면 생전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보리다.' 하더구나. 홧김에 적었더니 중을 보내고 생각하니, 푼전 일 리 없는 중에 삼백 석이 어디서 난단 말이냐? 도리어 후회로다."
하니 심청이 반겨 듣고 부친을 위로하되,
"아버지, 걱정 말으시고 진지나 잡수시오. 후회하면 진심이 못되오이다. 아버지 어두운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볼 양이면 공양미 삼백 석을 아무쪼록 준비하여 몽운사로 올리리다."
"네 아무리한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할 수가 있을소냐."
심청이 여쭈오되,
"왕상(王祥)은 고빙(求氷)하고 얼음 구멍에서 잉어 얻고, 곽거라 하는 사람은 부모 반찬 하여 놓으면 제 자식이 상머리에서 먹는다고 산 채 묻으려 할 제 금항을 얻어다가 부모 봉양 하였으니, 사친지효(事親之孝)가 옛사람만 못하나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오니 공양미는 자연히 얻사오리다. 깊이 근심 마옵소서."
만단 위로하고, 그날부터 목욕재계 전조단발하며 집을 소쇄(掃쇄)하며 후원에 단을 모아 북두칠성행야반(北斗七星행야반)에 만뢰구적한테 등불을 밝게 켜고, 정화수 한 그릇에 북향하여 비는 말이,
"간지 모월 모일에 심청은 근고우 재배하노니 천지일월성신이며 하지후토, 산령, 성황, 오방강신, 하백하며 제일의 석가여래, 감금강 칠보살, 팔부신장, 십왕성군, 강림이령 수차 흠향하옵소서. 하느님이 일월 두심이 사람의 안목이라. 일월이 없사오면 무슨 분별 하오리까? 아비 무자생신 삼십 안에 안맹하여 시물을 못 하오니, 아비 허물을 내 몸으로 대신 하옵고 아비 눈을 밝혀 주옵소서."
이렇게 빌기를 마지아니하니, 하루는 들으니 '남경 상고 선인들이 십 오 세 처자를 사려 한다' 하거늘 심청이 그 말 반겨 듣고, 귀덕어미 사이에 넣어 사람 사려 하는 곡절을 물은 즉,
"우리는 남경 선인으로 인당수 지나갈 제, 제수(祭需)로 제(祭)하면 무변대해(無邊大海)를 무사히 월섭(越涉)하고 십십만금 퇴를 내기로 몸 팔려 하는 처녀 있으면 값을 아끼지 않고 주겠노라."
하거늘, 심청이 반겨 듣고 말을 하되,
"나는 본촌 사람이러니 우리 부친 안맹하사 공양미 삼백 석을 지성으로 불공하면 눈을 떠 보리라 하되, 가세 지빈(至貧)하여 판출(販出)할 길이 전혀 없어 내 몸을 팔려 하니 나를 사감이 어떠하뇨?"
선인들이 이 말 듣고,
"효성이 지극하나 가긍하다."
하며 허락하고 즉시 쌀 삼백 석을 몽운사로 올리고,
"금년 삼월 십오일에 발선(發船)한다."
하고 가거늘 심청이 부친께 여쭈오되.
"공양미 삼백 석을 이미 올렸으니 이제는 근심치 마옵소서."
심봉사 깜짝 놀라,
"너 그 말이 웬말이냐?"
심청같은 천출지효녀가 어찌 부친을 속이랴마는 사세부득(事勢不得)이라 잠깐 궤술(詭述)로 속여 대답하되,
"장승상댁 노부인이 일전에 나더러 수양딸 삼으려 하시는데 차마 허락지 아니하였삽더니 공양미 삼백 석을 주선할 길이 전혀 없어 이 사연을 노부인께 여쭈온 즉 백미 삼백 석을 내어 주시기로 수양딸로 팔렸나이다."
하니, 심봉사 물색 모르고 이 말 반겨듣고,
"그러하면, 거룩하다. 그 부인은 일국 재상의 부인이라 아마도 다름이라. 후록(厚祿)이 많겠다. 저러하기에 그 자제 삼형제가 환로(宦路)에 등양(登揚)하느니라. 그러하나 자식으로 몸을 팔았단 말이 청문(聽聞)에 괴이하다마는 장승상댁 수양딸로 팔린 거야 관계하랴. 언제나 가느냐?"
"내월 망일(望日)로 데려간다 하더이다."
"어, 그 일 매우 잘 되었다."
심청 이 그날부터 곰곰 생각하니 눈 어두운 백발 부친 영결하고 죽을 일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십 오 세에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고, 일에도 뜻이 없어 식음을 전혀 하지않고 수심으로 지내더니, 다시금 생각하되 엎지러진 물이요 쏘아버린 화살이로다. 날이 점점 가까우니, '이러하여 못하겠다. 내가 살았을 제 부친의 의복 빨래나 하리라.' 하고 춘추 의복 상침 접것, 하절 의복 한삼 고의 박아 지어 다려 놓고, 동절 의복 솜 두어 보에 싸서 농에 걸어 두고, 행선날을 헤아리니 하룻밤이 지격(至隔)한지라.
밤은 적적 삼경인데 은하수 기울어졌다. 촛불만 대하여 두 무릎 마주 꿇고, 아미를 숙이려고 한숨을 길게 쉬니, 아무리 효녀라도 마음이 온전할소냐. '부친의 버선이나 망종 지으리라' 하고 바늘에 실을 꿰어 드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 눈이 침침, 정신이 아득하여 하염없이 울음이 간장으로부터 솟아나니, 부친이 깰가 하여 크게 울든 못하고 경경오열하여 얼굴도 대어 보며, 수족도 만져보며,
"날 볼 날 몇 밤이뇨. 내가 한번 죽어지면 뉘를 믿고 살으실까? 애닯도다 우리 부친, 내가 철을 안 연후에 밥 빌기를 놓으시더니 내일부텀이라도 동네 걸인 되겠으니, 눈친들 오죽하며 멸시인들 오죽할까. 무슨 험한 팔자로써 초칠일 안에 모친 죽고, 부친조차 이별하니 이런 일도 있을까? 하량낙일수운기(河梁落日數雲起)는 소통국(蔬通國)의 모자이별, 편삽수유소일인(遍揷茱萸少一人)은 용산(龍山)의 형제이별, 서출양관무고인(西出陽關無故人)은 위성(渭城)의 붕우이별, 정객관산노기중(征客關山路幾重)은 오희월녀(吳姬越女) 부부이별, 이런 이별 많건마는 살아 당한 이별이야 어느 날에 소식 알며 어느 때에 상면할가? 돌아가신 우리 모친 황천으로 가 계시고, 나는 이제 죽게 되면 수궁으로 갈 것이니 수궁에서 황천 가기 몇 만리 몇 천 리나 되는고. 모녀 상면하려 한들 모친이 나를 어찌 알며 내가 어찌 모친을 알리. 만일 묻고 물어 찾아가서 모녀 상면 하는 날에 응당 부친 소식 물으실 것이니 무슨 말씀으로 대답하리. 오늘 밤 오경시를 함지(咸池)에다 머무르고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지(扶桑枝)에다 맬 양이면 어여뿔사 우리 부친 좀 더 모셔 보련마는 일거월래(日去月來)를 뉘라서 막을소냐. 애고 애고, 설운지고."
천지가 사정없어 이윽고 닭이 우니 심청이 하릴없이,
"닭아 닭아 우지 마라. 제발 덕분에 우지 마라. 반야진관(半夜秦關)의 맹상군(孟嘗君)이 아니로다.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내가 죽는다. 죽기는 섧지 아니하여도 의지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인고."
어느덧 동쪽이 밝아오니 심청이 저의 부친 진지나 마지막으로 지어 드리리라 하고 문을 열고 나서더니, 벌써 선인들이 사립 밖에서 하는 말이,
"오늘이 행선(行船)날이오니 쉬이 가게 하옵소서."
하거늘, 심청이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빛이 없어지고 사지의 맥이 없어 목이 메고 정신이 어질하여 선인들을 겨우 불러,
"여보시오 선인님네, 나도 오늘이 행선날인 줄 이미 알거니와 내 몸 팔린 줄을 우리 부친이 아직 모르시오니, 만일 아시게 되면 지레 야단이 날 것이니 잠깐 지체하옵소서. 부친 진지나 마지막으로 지어 잡수신 연후에 말씀 여쭙고 떠나게 하오리다."
하니 선인들이,
"그리 하옵소서."
하거늘 , 심청이 들어와 눈물로 밥을 지어 부친께 올리고 상머리에 마주 앉아 아무쪼록 진지 많이 잡수시게 하느라고 자반도 떼어 입에 넣고, 김쌈도 싸서 수저에 놓으며,
"진지를 많이 잡수시오."
심봉사는 철도 모르고,
"야, 오늘은 반찬이 매우 좋구나. 뉘 집 제사 지냈느냐?"
그 날 꿈을 꾸니 이는 부자간 천륜이라 몽조가 있는 것이었다.
"아가 아가, 이상한 일도 있다. 간밤에 꿈을 꾸니 네가 큰 수레를 타고 한없이 가 보이니, 수레라 하는 것이 귀한 사람이 타느니라. 우리 집에 무슨 좋은 일이 있을가보다. 그렇지 아니하면 장승상댁에서 가마 태워 가려는가보다."
심청이는 저 죽을 꿈인 줄 짐작하고 거짓,
"그 꿈 좋사이다."
하고 진지상을 물러내고, 담배 태워 드린 후에 그 진지상을 대하여 먹으려 하니 간장이 썩는 눈물은 눈으로 솟아나고, 부친 신세 생각하며 저 죽을 일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떨려 밥을 못먹고 물린 후에 심청이 사당에 하직 차로 들어갈 제, 다시 세수하고 사당문 가만히 열고 하직하는 말이,
"불초 여손(女孫) 심청이는 아비 눈뜨기를 위하여 인당수 제수로 몸을 팔아 가오매 조종향화(祖宗香火)를 이로 좆아 끊게 되오니 불승영모(不勝永慕)하옵니다."
울며 하직하고 사당문 닫친 후에 부친 앞에 나아와 두 손을 부여잡고 기색(氣塞)하니 심봉사 깜짝 놀라,
"아가 아가, 이게 웬 일이냐? 정신 차려 말하여라."
심청이 여쭈오되,
"내가 불초 녀식으로 아버지를 속였오. 공양미 삼백 석을 뉘라서 나를 주겠오. 남경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수로 내 몸을 팔아 오늘이 떠나는 날이오니 나를 마지막으로 보옵소서."
심봉사 이 말을 듣고,
"참말이냐, 참말이냐? 애고 애고, 이게 웬 말인고. 못가리라 못가리라. 너 날더러 묻지도 않고 네 임의대로 한단 말가? 네가 살고 내가 눈 뜨면 그는 응당하려니와 자식 죽여 눈을 뜬들 그게 차마 할 일이냐? 너의 모친 너를 늦게야 낳고 초칠일 안에 죽은 후에 눈 어두운 늙은 것이 품 안에 너를 안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구차한 말 하여가면서 동냥젖 얻어 먹여 키워 이만치 자랐거든, 내 아무리 눈 어두우나 너를 눈으로 알고 너의 모친 죽은 후에 차차 전과 같더니, 이 말이 무슨 말인고? 마라 마라, 못하리라. 아내 죽고 자식 잃고 내 살아서 무엇 하리. 너하고 나하고 함께 죽자. 눈을 팔아 너를 살 데 너를 팔아 눈을 뜬들 무엇을 보고 눈을 뜨리. 어떤 놈의 팔자관대 사궁지수(四窮之首) 되단 말가. 네 이놈 상놈들아, 장사도 좋거니와 사람 사다 죽여 제하는데 어디서 보았느냐? 하느님의 어지심과 귀신의 밝은 마음 앙화(殃禍)가 없겠느냐? 눈 먼 놈의 무남독녀 철모르는 어린 아이 나 모르게 유인하여 값을 주고 산단 말고. 돈도 싫고 쌀도 싫다. 네 이 상놈들아, 옛 글을 모르느냐? 칠년 대한(大旱) 가물 적에 사람으로 빌라 하니 탕임금 어지신 말씀 '내가 지금 비는 바는 사람을 위함이라. 사람 죽여 빌 양이면 내 몸으로 대신하리라.' 몸으로 희생 되어 신영백모(身영白茅) 전조단발(剪爪斷髮)하고 상림(桑林) 뜰에서 빌었더니 대우방수천리(大雨方數千里) 비라. 이런 일도 있거니와 내 몸으로 대신 감이 어떠하냐?"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저런 놈들을 그저 두고 보오?"
심청이 부친을 붙들고 울며 위로하되,
"아버지, 하릴없소. 나는 이미 죽거니와 아버지는 눈을 떠서 대명천지(大明天地) 보고, 착한 사람을 구하여서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아버지 후사(後嗣)나 전코 불초소녀를 생각지 마옵시고 만세만세무량(萬歲萬歲無量)하옵소서. 이도 또한 천명이오니 후회한들 어찌 하오리까."
선인들이 그 정상을 보고, 영좌(領座)가 공론하되,
"심소저의 효성과 심봉사의 일생 신세를 생각하여 봉사 굶지 않고 벗지 않게 한 모개를 꾸며 주면 어떠하오?"
"그 말이 옳다."
하며, 쌀 이백 석과 돈 삼백 냥이며 백목(白木), 마포(麻布) 각 한 동씩 동중(洞中)에 들여놓고 동인 모아 구별하되,
"이백 석 쌀과 삼백 냥 돈을 근실한 사람 주어 도지 없이 성하게 길러 심봉사를 공궤(供饋)하되, 삼백 석 중에 이십 석은 당년 양식하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흩어 주어 장리(長利)로 취식(取息)하면 양식이 넉넉하고 백목 마포는 사절 의복 장만하고, 이 뜻으로 본관(本官)에 공문(公文) 내어 동중에 전하라."
구별을 다한 연후에 심소저를 가자 할 제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이 그제야 이 말을 듣고 급히 시비를 보내어 심소저를 청하거늘, 소저 시비를 따라가니 승상부인이 문 밖에 내달아 소저의 손을 잡고 울며 왈,
"네 이 무상한 사람아, 나는 너를 자식으로 알았더니 너는 나를 어미같이 아니 아는도다. 백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 죽으러 간다 하니 효성이 지극하다마는 네가 살아 세상에 있어 하는 것만 같을소냐. 날더러 의논했으면 진작 주선하였지야. 백미 삼백 석을 이제로 내어 줄 것이니 선인들 도로 주고 망령된 말 다시 말라."
하시니 심소저 여쭈오되,
"당초에 말씀 못한것을 이제야 후회한들 어찌 하오리까. 또한 부친을 위하여 공을 빌 양이면 어찌 남의 명색없는 재물을 빌어오며, 백미 삼백 석을 도로 내어 주면 선인들 임시 낭패오니 그도 또한 어렵삽고, 사람에게 몸을 허락하여 약속을 정한 후에 다시금 약속을 어기오면 소인의 간장이라. 그는 좆지 못하려니와 하물며 값을 받고 수 삭이 지난 후에 차마 어찌 낯을 들어 무슨 말을 하오리까. 부인의 하늘같은 은혜와 착하신 말씀은 지부(地府)로 돌아가와 결초보은 하오리다."
하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거늘. 부인이 다시 본즉 엄숙한지라. 하릴없이 다시 말리지 못하고 놓지도 못하시거늘, 심소저 울며 여쭈오되,
"부인은 전생의 나의 부모라. 어느 날에 다시 모시리까. 글 한 수를 지어 정을 표하오니 보시면 징험(徵驗)하오리다."
부인이 반기어 지필묵을 내어 주시니 붓을 글을 쓸 제 눈물이 비가 되어 점점이 떨어지니 송이송이 꽃이 되어 그림 족자로다. 중당(中堂)에 걸고 보니 그 글에 하였으되,
생기사귀일몽간(生寄死歸一夢間)에
권정하필루잠잠(眷情何必淚잠잠)이랴마는
세간에 최유단장처(世間最有斷腸處)하니
초록강남인미환(草綠江南未人還)을.
이 글 뜻은,
'사람의 죽고 사는 게 한 꿈 속이니
정을 이끌어 어찌 반드시 눈물을 흘리랴만은
세간의 가장 단장하는 곳이 있으니
풀 푸른 강남에 사람이 돌아오지 못하는도다.'
부인이 재삼 만집(挽執)하시다가 글 지음을 보시고,
"너는 과연 세상 사람 아니로다. 글은 진실로 선녀로다. 분명 인간의 인연이 다하여 상제 부르시매 네 어이 피할소냐? 내 또한 차운(次韻)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주시니 하였으되,
무단풍우가 야래혼(無端風雨夜來昏)하니
취송명화각하문(吹送名花각何門)고
적거인간천필연(謫居人間天必戀)하사
강고부녀단정은(强固父女斷情恩)을.
이 글 뜻은,
'무단풍우 밤이 어두워 오니
명화를 불어 보내어 뉘 문에 떨어지는고.
인간의 괴로움을 하늘이 생각하사
강인한 아비와 여식으로 하여금 은을 끊게 함이라.'
심소저 그 글을 품에 품고 눈물로 이별하니 차마 보지 못할러라.
심청이 돌아와서 저의 부친에게 하직할 새 심봉사 붙들고 뛰놀며 고통하여,
"네 날 죽이고 가지 그저는 못 가리라. 날 데리고 가거라. 너 혼자는 못 가리라."
심청이 부친을 위로하되,
"부자간 천륜을 끊고 싶어 끊사오며 죽고 싶어 죽사오리까마는 액운이 막히었삽고, 생사가 때가 있어 하느님이 하신 바오니 한탄한들 어찌 하오리까. 인정으로 할 양이면 떠날 날이 없사오리다."
하고 저의 부친을 동네 사람에게 붙들이고 선인들을 따라갈 제 방성통곡(放聲痛哭)하며 치마끈을 졸라 매고 치마폭 거듬거듬 안고 흩으러진 머리털은 두 귀 밑에 느리우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은 왼 옷에 사뭇 진다. 엎어지며 자빠지며 붙들여 나갈 제 건너 집 바라보며,
"아무개네 집 큰 아가, 상침질 수놓기를 뉘와 함께 하려느냐? 작년 오월 단오일에 추천하고서 놀던 일을 네가 행여 생각하느냐? 아무개네 집 작은 아가, 금년 칠월 칠석야에 함께 걸교(乞巧)하자더니 이제는 허사로다. 언제나 다시 보랴. 너희는 팔자 좋아 양친 모시고 잘있거라."
동네 남녀노소 없이 눈이 붓도록 서로 붙들고 울다가 성 위에서 서로 분수(分手)한 연후에, 하느님이 아시던지 백일은 어디 가고 음운이 자욱하며 청산이 찡그리는듯 강 소리 오열하고, 휘늘어져 곱드란하던 꽃은 이우러져 제 빛을 잃은 듯하고, 요록한 버들가지도 조을듯이 휘늘어졌고, 춘조(春鳥)는 다정하여 백반제(百般啼)하는 중에,
"묻노라. 저 꾀꼬리는 뉘를 이별하였건데 환우성(患憂聲)케 울어 오고 뜻밖에 피를 내어 우나? 야월공산(夜月空山) 어디 두고 진정제송단장성(盡情啼送斷腸聲)을 네 아무리 가지 위에 불여귀(不如歸)라 울건마는 값을 받고 팔린 몸이 다시 어찌 돌아올까."
바람에 날린 꽃이 옥면(玉面)에 와 부딪치니 꽃을 들고 바라보며,
"약도춘풍불해의(若道春風不解意)면 하인취송락화래(何因吹送落花來)오. 한무제 수양공주 매화잠(梅花簪)은 있건마는 죽으러 가는 몸이 뉘를 위하여 단장하리. 춘산의 지는 꽃이 지고 싶어 지랴마는 사세부득(事勢不得)이라 수원수구하리오."
한 걸음에 돌아보며 두 걸음에 눈물지며 강두에 다달으니 뱃머리에 좌판 놓고 심청이를 인도하여 뱃장 안에 실은 연후에 닻을 감고 돛을 달아 여러 선인들이 소리하는구나.
"어기야 어기야 어기양 어기양."
소리를 하며 북을 둥둥 울리면서 노를 저어 배질할 제 범피중유 떠나간다.
각설이라, 망망한 창해며 탕탕한 물결이라. 백빈주 갈매기는 홍료안(紅蓼岸)에 날아들고 삼상의 기러기는 한수(漢水)로 돌아들 제 요량한 물소리 어적(漁笛)인가 여기건만은 곡종인불견(曲終人不見)에 수봉(水峯)만 후르렀다.
'애내성중만고수(애乃聲中萬古愁)는 날 두고 이름이라.'
장사를 지나갈 제 태부(賈太傅) 간 곳 없고, 멱라수를 바라보니 굴삼려(屈三閭)의 어복충혼(魚腹忠魂) 무양(無恙)하시던가. 황학루(黃鶴樓)를 당도하니 '일모향관하처시오 연파강상사인수(日暮鄕關何處是 烟波江上使人愁)'는 최호(崔顥)의 유적이오, 봉황대를 다다르니 '삼산은 반락청천외요 이수는 중분백주'(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露洲)라. 이적선(李謫仙)의 노던 데요, 심양강 당도하니 백낙천은 어디 가고 비파성만 끊어졌다. 적벽강 그저 가랴. 소동파 놀던 풍월은 의구히 있다마는 조맹덕의 '일세지웅이 이금의안재재오'(一世之雄而今安在哉). 월락오제(月落烏啼) 깊은 밤에 고소성(姑蘇城)에 배를 매니 한산사 쇠북 소리 객선(客船)에 이르렀다. 진나라 회수를 건너갈 제 상녀(商女)는 부지망국한(不知亡國恨)하고 연롱한수월롱사(煙籠寒水月籠沙)할 제 후(後)정화만 부르는데, 소상강 들어가니 악양루 높은 집 호수 위에 떠 있거늘 동남으로 바라보니 오산(吳山)은 천첩(千疊)이요 초수(楚樹)는 망극(罔極)이라. 소상팔경이 눈 앞에 벌여 있거늘 역력히 둘러보니 강천이 망막하여 우루룩쭈루룩 오는 비는 아황(阿皇) 여영(女英)의 눈물이요, 반죽(斑竹)의 썩은 가지 점점이 맺혔으니 소상야우(소湘夜雨) 이 아니냐. 칠백 평 호(湖) 맑은 물은 추월(秋月)이 돋아오니 상하천광(上下天光) 푸르렀다. 어옹(漁翁)은 잠을 자고 자규만 날아들 제 동정추월(洞庭秋月)이 아니냐. 오초동남(吳楚東南) 너른 물에 오고 가는 상선은 순풍에 돛을 달아 북을 둥둥 울리면서 '어기야어기야이야' 소리하니 원포귀범(遠浦歸帆) 이 아니냐. 격안강촌양삼가(隔岸江村兩三家)에 밥 짓는 연기 나고, 반조입강석벽상(返照入江石壁上)에 거울 낯을 열었으니 무산낙조(巫山落照) 이 아니냐. 일간귀천심벽이요 반태용심이라. 웅장하게 일어나서 한 떼로 둘렀으니 창오모운(蒼梧暮雲) 이 아니며, 수벽사명양안태(水碧沙明 兩岸苔)의 청원을 못이기어서 일어 오는 저 기러기는 갈대 하나를 입에 물고 점점이 날아들며 낄룩낄룩 소리하니 평사낙안(平沙落雁) 이 아니냐. 상수(湘水)로 울고 가니 옛 사당이 완연하다. 남순형제(南巡兄弟) 혼이라도 응당 있으려니 하였더니 제 소리에 눈물지니 황릉이원(黃陵二園) 이 아니냐. 새벽 쇠북 큰 소리에 맑은 쇠소리 '뎅뎅' 섞여 나니, 오는 배 천리 원객(遠客)의 깊이 든 잠을 놀래어 깨우고, 탁자 앞의 늙은 중은 아미타불 염불하니 한산사 저녁 종소리 이 아닌가.
팔경을 다 본 연후에 행선(行船)을 하려 할 제 향풍(香風)이 일어나며 옥패 소리 들리더니 죽림 사이에서 어떠한 두 부인이 선관(仙冠)을 높이 쓰고 자하상(紫霞裳) 석유군의 신을 끌어 나오더니,
"저기 가는 심소저야, 네 나를 모르리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 죽상지루내가멸(蒼梧山崩湘水絶 竹上之淚乃可滅)을 천추에 깊어 하소할 곳 없었더니, 지극한 너의 효성을 하례(賀禮)코자 나왔노라. 요순 후 수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때인데, 오현금남풍시(五絃琴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수로 먼먼 길에 조심하여 다녀오라."
하며 홀연 간데 없거늘, 심청이 생각하되,
'이는 이비로다.'
서산에 당도하니 풍랑이 크게 일어 찬 기운이 소삽하여 검은 구름이 두르더니 사람이 나오는데, 면여거륜(面如巨輪)하고 미간이 광할한데 가죽으로 몸을 싸고 두 눈을 딱 감고 심청을 불러 소리하되,
"슬프다, 우리 오(吳) 왕 백비의 참소 듣고 촉루검을 나를 주어 목 찔러 죽은 후에 칠피(漆皮)로 몸을 싸서 이 물에 던졌으니, 애닯다, 장부의 원통함이 월나라 병정이 오를 멸말시키는 것을 역력히 보려고 내 눈을 빼어 동문 위에다 걸고 왔더니 과연 내 보았노라. 그러나 내 몸을 감은 가죽은 뉘라서 벗겨 주며, 눈 없는 게 한이로다."
이는 누군가 하니 오나라 충신 오자서일러라.
풍운이 걷히고 해와 달이 명랑하여 물결이 잔잔터니 어떠한 두 사람이 택반(澤畔)으로 나오는데, 앞의 한 사람은 왕자의 기상이요, 얼굴의 검은 때는 일국수색(一國愁色) 띄어 있고, 의복이 남루하니 초수(楚囚)일시 분명하다. 눈물지며 하는 말이,
"애닯고 분한 게 진나라의 속임 되어 삼년 무관에서 고국을 바라보고 미귀혼(未歸魂)이 되었구나. 천추의 깊은 한이 초혼조 되었더니 박랑퇴성(博浪槌聲) 반겨 듣고 속절없이 동정 달에 헛 춤만 추었노라."
뒤에 또 한 사람은 안색이 초췌하고 형용이 고고한데,
"나는 초나라 굴원이라. 회왕을 섬기다가 자란(子蘭)의 참소를 만나 더러운 몸 씻으려고 이 물에 와 빠졌더니, 어여뿔사 우리 임금 사후에나 섬기리라 하고 이 땅에 와 모셨노라. 내 지은 이소경 제고양지묘예혜여 짐황고왈백용(帝高陽之苗裔兮 朕皇考曰伯庸)이라. 유초목지영락혜여 공미인지지혜(唯草木之零落兮 恐美人之遲兮)로다. 세상의 문장 재사 몇몇이나 되던고. 그대는 위친하여 효성으로 죽고, 나는 충성을 다하더니, 충효는 일반이라 위로코자 내 왔노라. 창해만리 먼먼 길에 평안히 가옵소서."
심청이 생각하되,
'죽은 지 수 천년의 정백(精魄)이 남아 있어 사람의 눈에 보이니 이도 또한 귀신이라. 나 죽을 징조로다.'
슬피 탄식하되,
"물에 잠이 몇 밤이며, 배의 밤이 몇 날이냐? 어언 사 오 삭이 이 물같이 지나가니 금풍삽이석기하고 옥우확이쟁영(金風颯以夕起 玉宇廓以쟁嶸.)이라. '낙하는 여고목바하고 추수는 공장천일색(落霞與孤鶩薺飛 秋水共長天一色.)'이라, 왕발이 지은 시구요.'무변낙목소소하요 부진장강곤곤래(無邊落木蕭蕭下 不盡長江滾滾來.)는 두자미(杜甫) 읊은 시구요. 강안이 귤롱하니 황금이 편편이라 노화풍비하니 백설이 만점(江岸귤濃黃金片片 蘆花風飛白雪萬點.)이요. 신포세류 지는 잎은 옥로청풍 불고 있는데 외로운 어선들은 등불을 돋워 달고 어부가로 화답하니 그도 또한 수심(愁心)이 아니며, 해반청산(海畔靑山)은 봉우리마다 칼날되어 벌이나니 수장이라. 일락장사추색원의 부지하처조상군(日落長沙秋色遠 不知何處弔湘君)고. 송옥의 비추부가 이보다 더할소냐? 동남선녀를 실었으니 진시황의 채약배(採藥船)인가. 방사(方士) 서불(西市) 없으니 한무제의 구선배(求仙船)인가 지레 죽자 한들 선인들이 지키고, 살아 가자니 고국이 창망이라."
한 곳을 당도하니 돛을 지우며 닻을 주니 이는 곧 인당수라. 광풍이 대작하여 바다가 뒤누우며 어룡이 싸우는듯, 벽력이 일어나는듯 넓은 바다 한 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 노도 잃고 닻도 끊어지며 용총도 부러져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쳐 안개 비 뒤섞여 자자진데, 갈 길은 천 리 만 리 남아 있고, 사면은 어둑 저물어 천지 적막하여 간신히 떠 오는데, 뱃전에 탕탕, 돛대도 와지끈, 경각에 위태하니 도사공 영좌 이하로 황황히 겁내어 혼불부신(魂不附身)하며 고사 기계를 차릴 적에, 섬 쌀로 밥을 짓고, 동이 술에 큰 소 잡아 온 소다리 온 소머리 사지를 갈라 올려 놓고, 큰 돝 잡아 통 채 삶아 큰 칼 꽂아 기는 듯이 받쳐 놓고, 삼색실과(三色實果)며 오색탕수(五色糖水)와 어동육서(魚東肉西)며 좌포우혜(左脯右醯)와 홍동백서(紅東白西)를 방위 차려 고여 놓고, 심청을 목욕시켜 흰 옷 깨끗하게 입히어 상 머리에 앉힌 연후에, 도사공의 거동 보소. 북을 둥둥 치면서 고사할 제,
"두리둥두리둥, 칩떠 잡아 삼십삼천(三十三天), 내립떠 잡아 이십팔수(二十八수), 허궁천지 비비천(虛窮天地 非非天)과 삼황오제(三皇五帝) 도리천 시왕(十王) 일이등 마련하옵실 제, 천상의 옥황상제며 지하의 십이제국 차지하신 황제 헌원씨와 공맹안증(孔子.孟子.顔廻.曾子) 법문(法文)내고, 석가여래 불도(佛道) 마련이며, 복희씨(伏犧氏) 시획팔괘(始獲八卦) 하였고, 신농씨 시상백초 시유의약(始嘗百草 始有醫藥)하여 있고, 헌원씨 배를 내어 이제불통(以濟不通)하옵실 제, 후생(後生)이 본받아 사농공상 위업(爲業)으로 다 각기 생애 직업하니 막대하신 공이 아니시며, 하우씨 구년지수(九年之水)를 배를 타고 다스렸고, 오국을 정한 공 세우고 구주(九州)로 돌아들며, 오자서 분오할 제 노가로 건네 주고, 해성에서 패한 항우장사 오강으로 돌아들 제 배가 기다려 있고, 제갈공명의 조화로 동남풍을 빌어내어 조조의 십만 대병 수륙으로 화공(火攻)하니 배 아니면 어이하며, 도연명은 전원으로 돌아오고 장한은 강동으로 돌아갈제 이도 또한 배를 타고, 임술지추(任戌之秋) 칠월에 종일위지소여(從一葦之所如)하니 소동파도 놀아 있고, 지국총어사화하니 교여승유무정거는 어부의 즐거움이요, 계도난요노하장포(桂棹蘭橈櫓下長浦)하니 오희월녀(吳姬越女)의 채련주(採蓮舟)요, 지오부서거하니 경세우경년(經歲又經年)은 상고선(商賈船)이 아니냐.
우리 동무 스물 네 명이 상고로 위업하여 십 여 세에 조수 타고 표박서호 다니더니, 인당수 용왕님은 인제수(人祭需)를 받잡기로 유리국 도화동에 사는 십 오 세 된 효녀 심청을 제수로 드리오니 사해 용왕님은 고이고이 받자옵소서. 동해신 아명(阿明) 서해신 거승(巨勝)이며 남해신 축융(祝融) 북해신 우강(偶疆)이며, 칠금산 용왕님 자금산 용왕님 개개섬 용왕님, 영각대감 성황님, 허리간의 화장 성황님, 이물 고물 성황님네, 다 굽어 보옵소서. 수로(水路) 천리 먼먼 길에 바람 구멍을 열어내고 낮이면 고루 넣어 용난골수 깊었는데, 평반(平盤)에 물 담은듯이 배도 무쇠가 되고, 닻도 무쇠가 되고, 용총 마루 닻줄 모두 다 무쇠로 점지하옵고 영락지환(零落之患)이 없삽고 실물실화(失物失貨) 제살(制煞)하여 억십만금 퇴를 내어 대 끝에 봉기 질러 웃음으로 연화하고 춤으로 대길하게 점지하여 주옵소서."
하며 북을 둥둥 치면서,
"심청은 시(時)가 급하니 어서 바삐 물에 들라."
심청의 거동보소. 두 손을 합장하고 일어나서 하느님 전에 비는 말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 전에 비나이다. 심청이는 죽은 일은 추호라도 섧지 아니하여도, 병신 부친의 깊은 한을 생전에 풀려 하옵고 이 죽음을 당하오니 명천은 감동하옵셔서 침침한 아비 눈을 명명하게 띄여 주옵소서."
팔을 들어 소리치고,
"여러 선인 상고님네 편안히 가옵시고, 억십만금 퇴를 내어 이 물가를 지나거든 나의 혼백 불러 무랍이나 주오."
두 활개를 쩍 벌리고 뱃전에 나서 보니 수쇄한 푸른 물은 월리렁 출렁 뒤둥굴어 물농울쳐 거품은 북적 쪄 드는데, 심청이 기가 막혀 뒤로 벌떡 주저앉아 뱃전을 다시금 잡고 기절하여 엎드린 양은 차마 보지 못할러라.
심청이 다시 정신 차려 할 수 없이 일어나 온몸을 잔뜩 쓰고 치마폭을 무릅쓰고 총총걸음으로 물러섰다 창해(滄海) 중에 몸을 주어,
"애고 애고 아버지, 나는 죽소."
뱃전에 한 발을 짐칫하며 꺼꾸로 풍덩 빠져 놓으니, 행화(杏花)는 풍랑(風浪)을 붸고 명월은 해문(海汶)에 잠기니 차소위묘창해지일속(此所謂渺滄海之一粟)이라. 새는 날 정신(靜晨)같이 물결은 잔잔하고 광풍은 삭아지며 안개 자옥하니 가는 구름 머물렀고 청천(靑天)의 푸른 안개 새는 날 동방처럼 일기 명랑하더라.
도사공 하는 말이,
"고사를 지낸 후에 일기 순통하니 심낭자의 덕이 아니신가."
좌중이 일심이라. 고사를 파하고 술 한 잔씩 먹고, 담배 한 대씩 먹고,
"행선합세."
"어 그리 합세."
"어기야, 어기야."
뱃노래 한 곡조에 삼승(三升) 돛 짝을 채워 양쪽에 갈라 달고 남경으로 들어갈 제, 와룡수(渦龍水) 여울물의 이전 살대같이, 안족(雁足)에 전한 편지 북해상의 기별같이 순식간에 남경으로 득달하니라.
이때에 심낭자는 창해 중에 몸이 들어 죽는 줄로 알았더니, 오운이 영롱하고 이향(異香)이 코에 닿더니 옥적성(玉笛聲) 맑은 소리 은은히 들리거늘 몸을 머물러 주저할 제, 옥황상제 하교하사 인당수 용왕과 사해 용왕 지부왕에게 낱낱이 하교하시되,
"명일에 출천효녀 심청이가 그곳을 갈 것이니 몸에 물 한 점 묻지 않게 하되, 만일 모시기를 실수하면 사해 용왕은 천벌을 주고 지부왕은 손도(損徒)를 줄 것이니 수정궁으로 모셔들여 삼년 공궤 단장하여 세상으로 환송하라."
하교하시니, 사해용왕이며 지부왕이 모두 다 황겁하여 무수한 강한제장(江漢諸將)과 천택지군(川澤之君)이 모여들 제, 원참군 별주부, 승지 도미, 비변랑 낙지, 감찰의 잉어며 수찬의 송어와 한림의 붕어, 수문장의 메기, 청명사령 자가사리, 승대 북어 삼치 갈치, 앙금 방게, 수군 백관이며, 백만 인갑이며, 무수한 선녀들은 백옥교자(白玉轎子)를 등대하여 그 시를 기다리더니, 과연 옥같은 심낭자 물로 뛰어드니 선녀들이 받들어 교자에 올리거늘, 심낭자 정신을 차려 이르는 말이,
"진세간(塵世間)의 거칠고 낮은 인생으로 어찌 용궁의 교자를 타오리까?"
하니, 여러 선녀들이 여쭈오되,
"옥황상제의 분부가 지엄하시니, 만일 타시지 아니하시면 우리 용왕이 죄를 면치 못하겠사오니 사양치 마시고 타옵소서."
심낭자 그제야 마지못하여 교자 위에 높이 않으니 팔선녀는 교자를 메고, 육룡이 시위하여 강한지장과 천택지군이 좌우로 늘어서, 청학 탄 두 동자는 앞길을 인도하여 해수로(海水路) 길 만들고, 풍악으로 들어갈 제, 천상 선관 선녀들이 심소저를 보려하고 벌여 섰으니, 태을선녀(太乙仙女)는 학을 타고, 적송자(赤松子)는 구름 타고, 사자 탄 갈선옹(葛仙翁)과 청의동자 백의동자, 쌍쌍 시비 취적성과 월궁 항아 서왕모며, 마고선녀, 낙포선녀와 남악부인 팔선녀 다 모였는데, 고운 복색 좋은 패물 향기도 이상하며 풍악도 진동한다. 왕자진(王子晋)의 봉피리며, 곽처사의 죽장고며, 성연자의 거문고와 장자방의 옥통소며, 혜강의 해금이며 완적의 휘파람에 적타고 취옹적하며 능파사(凌波詞) 보허사며, 우의곡 채련곡을 섞갈려 노래하니, 그 풍류 소리 수궁에 진동한다. 수정궁으로 들어가니 별유천지비인세(別有天地非人世)로다. 남해 광리왕이 통천관을 쓰고, 백옥홀을 손에 들고 호기 찬란하게 들어가니 내(川) 삼천(三千)과 팔백 수궁 지부 대신들은 왕을 위하여 영덕전 큰 문 밖에 차례로 늘어서서 상호(相互) 만세하더라. 심낭자의 뒤로는 백로 탄 여동빈(呂洞賓), 고래 탄 이적선과 청학 탄 장여는 비상천(飛上天)하는구나. 집 치레 볼작시면 능란하고 웅장할시고. 괘용골이위양(卦龍骨而爲양)하니 영광이 요일(靈光曜日)이요 집어린이작와하니서기반공(緝魚鱗而作瓦瑞氣蟠空)이라. 주궁패궐(珠宮貝闕)은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이오 곤의수상(坤儀殊常)은 비인간지오복(備人間之五福)이라. 산호렴(珊瑚簾) 대모병(玳瑁屛)은 광채도 찬란하고, 교인단모장(鮫人緞毛帳)은 구름같이 높이 치고, 동으로 바라보니 대붕(大鵬)이 비진(飛振)하는데 청어람(靑於藍) 푸른 물은 보(洑) 가에 둘러 있고, 서쪽으로 바라보니 약수유사(弱水柳絲) 아득한데, 일쌍 청조 날아들고, 북으로 바라보니 일발청산(一髮靑山)은 비취색을 띠어 있고, 위를 바라보니 상운서일(祥雲瑞日) 붉었는데 상통삼천하달구리(上通三千下達九里)하고, 음식을 둘러보니 세상 음식 아니로다. 파리반(坡璃盤) 마류안(瑪琉案)과 유리잔 호박대에 자하주 천일주 인포로 안주 하고, 호리병 제호탕에 감로주도 넣어 있고, 윽액경장호마반도도 와 있고, 한 가운데 삼천벽도(三千碧桃)도 덩그렇게 고였는데, 무비선미(無比仙味)어늘, 수궁에 머무를 새 옥황상제의 명이어든 거행이 오죽하랴.
사해 용왕이 다 각기 시녀를 보내어 조석으로 문안하고, 체번(替番)하여 문안하며 시위하니 금수능라(錦繡綾羅) 오색채의(五色彩衣) 화용월태 고운 얼굴, 다 각기 고이려고 교태하여 웃는 시녀, 얌전코자 죽는 시녀, 천정으로 고운 시녀, 수려한 시녀들이 주야로 모일 적에 삼일에 소연하고 오일에 대연하며, 상당의 채단 백 필이며 하당의 진주 서 되라. 이처럼 공궤하되 유공불급(猶恐不及)하여 조심이 각별터라.
각설 이 때, 무릉촌 장승상댁 부인이 심소저의 글을 벽에 걸어 두고 날마다 징험하되 빛이 변치 아니하더니, 하루는 글 족자에 물이 흐르고 빛이 변하여 검어지니 이는 심소저 물에 빠져 죽은가 하여 무수히 탄식하더니, 이윽고 물이 걷고 빛이 황홀하여지니, 부인이 괴이히 여겨 누가 구하여 살아났는가 하며 십분 의혹하나 어찌 그러하기 쉬우리요. 그 날 밤에 장승상부인이 제전(祭典)을 갖추어 강상에 나아가 심소저를 위하여 혼을 불러 위로코자 하여 제하려 하고 시비를 데리고 강두에 다달으니, 밤은 깊어 삼경인데 첩첩이 싸인 안개 산악에 잠겨 있고, 첩첩이 이는 내는 강수로 어리었다. 편주(片舟)를 흘리저어 중류에 띄워 두고, 배 안에서 설위하고 부인이 친히 잔을 부어 오열한 정으로 소저를 불러 위로하는 말이,
"오호 애재 심소저야,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즐거워 함은 인정에 고연커늘 일편단심의 양육하신 부친의 은덕을 죽기로써 갚으려 하고, 이로 잔명을 스스로 자단하니, 고운 꽃이 흐터지고 나는 나비 불에 드니 어찌 아니 슬플소냐. 한 잔 술로 위로하니 응당 소저의 혼이 아니면 아니하리니 고이 와서 흠향함을 바라노라."
눈물 뿌리어 통곡하니 천지 미물인들 어찌 아니 감동하리. 두렷이 밝은 달도 체운 속에 숨어 있고, 해맑게 불던 바람도 고요하고, 어룡도 있었던지 강심도 적막하고, 사장에 노던 백구도 목을 길게 빼어 끌룩끌룩 소리 하며, 심상한 어선들은 가던 돛대 머무른다. 뜻밖에 강가운데로부터 한 줄 맑은 기운이 뱃머리에 어리었다가 이윽하여 사라지며 일기 명랑커늘, 부인이 반겨 일어서서 보니 가득히 부었던 잔이 반이나 없는지라, 소저의 영혼을 못내 느꺼워 하시더라.
일일은 광한전 옥진부인이 오신다 하니 수궁이 뒤눕는듯 용왕이 겁을 내어 사방이 분주하니, 원래 이 부인은 심봉사의 처 곽씨부인이 죽어 광한전 옥진부인이 되었더니, 그 딸 심소저가 수궁에 왔단 말을 듣고, 상제께 수유하고 모녀상봉하려 하고 오는 길이라.
심소저는 뉘신 줄을 모르고 멀리서 바라볼 따름일러니, 오운이 어리었고 오색채교를 옥기린에 높이 싣고 벽도화 단계화는 좌우에 벌여 꼽고, 각 궁 시녀들은 시위하고, 청학 백학들은 전배하고, 봉황은 춤을 추고, 앵무는 전어하는데 보던 바 처음일러라.
이윽고 교자에서 내려 섬돌에 올라서며,
"내 딸 심청아!"
부르는 소리에 모친인 줄 알고 왈칵 뛰어 나서며,
"어머니 어머니, 나를 낳고 초칠일 안에 죽었으니 우금 십 오년을 얼굴도 모르어니 천지간 가없이 깊은 한이 갤 날이 없삽더니, 오늘날 이곳에 와서야 모친과 상면할 줄을 알았더면 오던 날 부친 앞에서 이 말씀을 여쭈었다면 날 보내고 설운 마음 적이 위로하실 것을, 우리 모녀는 서로 만나 보니 좋거니와 외로우신 아버님은 뉘를 보고 반기시리까. 부친 생각이 새로와라."
부인이 울며 왈,
"나는 죽어 귀히 되어 인간 생각 망연하다. 너의 부친 너를 키워 서로 의지하였다가 너조차 이별하니, 너 오던 날 그 정상이 오죽하랴. 내가 너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야 너의 부친 너를 잃은 서름에다가 비길소냐. 묻노라. 너의 부친 궁곤에 싸이어서 그 형용이 어떠하며 응당 많이 늙었으리라. 그간 수 십년에 면환이나 하였으며, 뒷마을 귀덕어미 네게 아니 극진터냐?"
얼굴도 대어 보며, 수족도 만져 보며,
"귀와 목이 희었으니 너의 부친 같도다. 손과 발이 고운 것은 어찌 아니 내 딸이랴. 내 끼던 옥지환도 네가 지금 가졌으며, 수복강령 태평안락 양편에 새긴 돈 흥전 괴불 줌치 청홍당사 벌매듭도 애고, 네가 찼구나. 아비 이별하고 어미 다시 보니 쌍전키 어려울손 인간고락이라. 그러나 오늘날 나를 다시 이별하고 너의 부친을 다시 만날 줄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광한전 맡은 일이 직분이 허다하여 오래 비우기 어렵기로 도리어 이별하니 애닯고 애연하나 임의로 못하나니 한탄한들 어이할소냐. 일후에 다시 만나 즐길 날이 있으리라."
하고 떨치고 일어서니, 소저 만류치 못하고 따를 길이 없는지라, 울며 하직하고 수정궁에 머물더라.
이 때 심봉사 딸을 잃고 모진 목숨 죽지 못하여 근근 부지 살아갈제, 도화동 사람들이 심소저의 지극한 효성으로 물에 빠져 죽음을 불쌍히 여겨 타루비를 세우고 글을 지었으되,
지위기친쌍안폐하여
살신성효행용궁을
연파만리상심부하니
방초년년한불궁이라
강두에 내왕하는 행인이 비문을 보고 뉘 아니 울 이 없고, 심봉사는 딸 곧 생각나면 그 비를 안고 울더라.
동중 사람들이 심맹인의 전곡을 착실히 취리하여 형세가 해마다 늘어가니, 본촌의 서방질 일쑤 잘하여 밤낮없이 흘레하는 개같이 눈이 벌겋게 다니는 뺑덕어미가 심봉사의 전곡이 많이 있는 줄을 알고 지원 첩이 되어 살더니, 이년의 입버르장머리가 또한 아래 버릇과 같아 한시 반 때도 놀지 아니하려고 하는 년이라. 양식 주고 떡 사먹기, 베를 주어 돈을 사서 술 사먹기, 정자 밑에 낮잠자기, 이웃집에 밥 붙이기, 동인더러 욕설하기, 초군들과 쌈 싸우기, 술 취하여 한 밤중에 앙탈부려 울음 울기, 빈 담뱃대 손에 들고 보는 대로 담배 청하기, 총각 유인하기, 제반 악증을 다 겸하여 그러하되, 심봉사는 여러 해 주린 판이라 그중에 실락은 있어 아무런 줄을 모르고, 가산이 점점 퇴패하니 심봉사 생각다 못하여서,
"여보 뺑덕이네, 우리 형세 착실하다고 남이 다 수군수군하더니 근래에 어찌한지 형세가 치패하여 도리어 빌어먹게 되어가니, 이 늙은 것이 다시 빌어먹자 한들 동인도 부끄럽고, 나의 신세도 악착하니 어디 낯을 들어 다니겠나."
뺑덕어미 대답하되,
"봉사님, 여태 자신 게 무엇이요? 식전마다 해장하신다고 죽 값이 여든 두 양이오. 저렇게 갑갑하다니까. 낳아서 키우지도 못한 것 밴다고 살구는 어찌 그리 먹고 싶던지 살구 값이 일흔 석 양이오. 저렇게 갑갑하다니까."
봉사 속은 타고, 헛 웃음 웃으며,
"야, 살구는 너무 많이 먹었다. 그렇지마는 계집 먹은 것 쥐 먹은 것이라니 아니 쓸 데였다. 우리 세간 기물을 다 팔아 가지고 타관으로 나가세."
"그도 그러하오."
여간 기물을 다 팔아 지고 남부여대하고 유리출타하니라.
일일은 옥황상제께옵서 사해 용왕에게 전교하시사,
"심소저의 월로방연의 기한이 가까우니 인당수로 환송하여 어진 때를 잃지 말게하라."
분부가 지엄하시거늘, 사해 용왕이 심소저를 치송할 제 큰 꽃송이에 모시고 두 시녀로 시위하여 조석 공양 찬물과 금수보패를 많이 넣고 옥분에 고이 담아 인당수로 나올새, 사해 용왕이 친히 나와 전송하고, 각 궁 시녀와 여쭈오되,
"소저는 인간에 나아가옵셔서 부귀와 영총으로 만만세를 즐기옵소서."
소저 대답하되,
"여러 왕의 덕을 입어 죽을 몸이 다시 살아 세상에 나가오니 은혜난망이오, 모든 시녀들도 정이 깊도다. 떠나기 섭섭하오나 유현이 노수한 고로 이별하고 가거니와 수궁의 귀하옵신 몸이 내내 평안하옵소서."
하직하고 돌아서니 순식간에 꿈같이 인당수에 번듯 떠서 두렷이 수면을 영롱케 하니 천신의 조화요 용왕의 신령이라. 바람이 분들 까딱하며 비가 온들 흐를소냐. 오색채운이 꽃봉오리 속에 어리어 둥덩실 떴을 제, 남경 갔던 선인들이 억십만금퇴를 내어 고국으로 돌아온다. 인당수에 다달아서 배를 매고 제수를 정히 하여 용왕에게 제를 지낼새 고축하는 말이,
"우리 일행 수 십 명의 신변제살제액하고 소망을 여의케 일우워 주옵시니, 용왕님의 넓으신 덕택을 한 잔 술로 정성을 드리오니 일제히 화의동심하여 흠향하옵소서."
하고, 제물을 다시 차려 심소저의 혼을 불러 슬픈 말로 위로하되,
"출천효녀 심소저는 당상 백발 부친의 눈뜨기를 위하여 이팔홍안이 시사여귀하여 수국고혼이 되었으니 어찌 아니 가련코 불쌍하랴. 우리 선인들은 소저를 인연하여 장사의 퇴를 내어 고국으로 돌아가거니와 소저의 방혼이야 어느 날에 다시 돌아올까? 가다가 도화동에 들러서 소저의 부친 살았는가 존망여부는 알고 가오리다. 그러나 한 잔 술로 위로하니, 만일 아심이 있거든 복망 영혼은 흠향하옵소서."
하며 제물을 풀고, 눈물을 씻고 한 곳을 바라보니 한 송이 꽃봉오리가 해중에 둥실 떠 있거늘, 선인들이 고히 여겨 저희들끼리 의논하되,
"아마도 심소저의 영혼이 꽃이 되어 떴나보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과연 심소저가 빠지던 곳이라. 마음이 감동하여 꽃을 건저내어 놓고 보니, 크기가 수레바퀴 같아서 이 삼인이 가히 앉을러라.
"사 오 삭에 경영한 길이 수 삼일만에 득달하니 이도 또한 이상타."
하더라.
억십만큼 남은 재물을 다 각기 수분할 제, 도선주는 무슨 마음으로 재물은 마다하고 꽃봉오리만 차지하여 저의 집 정한 곳 대에 단을 묻고 두었더니 향취가 만실하고 채운이 둘렀더라.
이 때에 송천자 황후가 붕하신 후 간택을 아니하시고 화초를 구하여 상림원에다 채우고, 황극전 뜰앞으로 여기저기 심어 두고 기화요초로 벗을 주어 구하실 제, 화초도 많기도 하다. 팔월부용군자요, 만당추수 홍련화며, 암향부동월향혼에 소식 전하던 매화며, 진시유랑거휴재는 붉어 있는 복숭아요, 계자편월중단은황무시요 계화며, 요염섬심옥지갑은 금분야도 봉선화며, 구월구일용산음소축신의 국화며, 공자왕손방수화의 부귀할손 모란화며, 이화만지불개문은 장신궁 중 배꽃이며, 칠십제자 강론하던 행단 춘풍 살구꽃이며, 천태산 들어가니 양변개 작약이요, 촉국한을 못이기어 제혈하던 두견화며 촉국 백국 시월국이며, 교화 난화 산당화며 장미화에 행일화며 주자화의 금선화와 능수화에 견우화며, 영산홍 자산홍에 왜철쭉 진달래 백일홍이며, 난초 반초에 강진행이요, 그 가운데에 전나무와 호도목이며 석류목에 송백목이며, 치자 목송 백목이며, 율목 시목에 행자목이며, 자두 능금 도리목이며, 오미자 탱자 유자목이며, 포도 다래 으름 넝쿨 너울너울 각색으로 층층이 심어 두고 때를 따라 구경하실 제, 향풍이 건듯 불면 우질우질 넘놀며, 울긋불긋 떨어지며, 벌 나비 새 짐승이 춤추며 노래하니, 천자 홍을 붙이어 날마다 구경하시더라.
이 때에 남경 선인이 궐내의 소식을 듣고 홀연 생각하되,
'옛 사람이 벼슬 등지고 천자를 생각하니, 나도 이 꽃을 가져다가 천자께 드린 후에 정성을 나누니라.'
하고 인당수에서 얻은 꽃 옥분에 채운하여 궐문 밖에 당도하여 이 뜻으로 주달하니, 천자 반기사 그 꽃을 들여다가 황극전에다 놓고 보니 빛이 찬란하여 일월지생광이요, 크기가 짝이 없어 향기 특출하니 세상 꽃이 아니로다.
'월중단계 그림자가 완연하니 계화도 아니오, 요지벽도 동방삭이 따 온 후에 삼천년이 못되니 벽도화도 아니오, 서역국에 연화씨 떨어져 그 꽃 되어 해중에 떠 왔는가?'
하시며, 그 꽃 이름을 '강선화'라 하시고 자세히 살펴 보니, 붉은 안개 어리어 있고, 서기(瑞氣)가 반공(蟠空)하니 황제 대희하사 화계(花階)로 옮겨 놓으니, 모란화 부용화가 다 하품(下品)으로 돌아가니, 매화 국화 봉선화는 모두 다 신(臣)이라 칭하더라. 천자 아시는 바, 다른 꽃 다 버리고 이 꽃뿐이로다.
일일은 천자 당나라 옛일을 본받아 궁녀에게 전교(傳敎)하사 화청지에 목욕하실새 천자 친히 달을 따러 화계에 배회하시더니, 명월은 만정(滿庭)하고 미풍은 부동한데 강선화 봉오리가 문득 요동하며 가만히 벌어지며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하거늘, 몸을 숨겨 가만히 살펴 보니 선연(嬋娟)한 용녀 얼굴을 반만 들어 꽃봉오리 밖으로 반만 내다보시니 인적 있음을 보고, 인하여 도로 후리처 들어가거늘, 황제 보시고 홀연 심신이 황홀하사 의혹이 만단하여 아무리 서 있은들 다시는 동정이 없거늘, 가까이 가서 꽃봉오리를 가만히 벌리고 보시닌 일개(一介) 소저요 양개(兩介) 미인이라, 천자 반기사 물으시되,
"너희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미인이 즉시 내려와 복지(伏地)하여 여쭈오되,
"소녀는 남해 용궁 시녀옵더니 소저를 모시고 해양으로 나왔삽다가 황제의 천안(天顔)을 범하였아오니 극히 황공하오이다."
하거늘, 천자 내념(內念)에 생각하시되,
'상제께옵서 좋은 인연을 보내시도다. 천여불취하면 시호시호여부재래(天與不取 時乎時乎不再來)라.'
하시고,
'배필을 정하리라.'
하시사 혼인을 완정하시고, 태사관(太史官)으로 하여금 택일(擇日)하니 오월 오일 갑자일이라.
소저로 황후를 봉하여 승상의 집으로 모신 후에 길일이 당하매 전교하시사,
"이러한 일은 전만고(前萬古)에 없는 일이니 가례범절(嘉禮凡節)을 별반(別般) 설화하라."
하시니, 위의 거동이 또한 금세에 처음이오, 전고에 더욱 없더라.
황제 연석에 나와 서시니 꽃봉오리 속에서 양개 시녀 소저를 부액(扶腋)하여 모셔 나오니, 북두칠성의 좌우보필이 갈라 섰는 듯, 궁중이 휘황하여 바로 보기 어렵더라.
국가의 경사라 대사천하(大赦天下)하고, 남경 갔던 도선주를 특별히 제수(際授)하여 무장태수를 하게 하시고, 만조제신(萬朝諸臣)은 상호 만세하고, 솔토지인민(率土之人民)은 화봉삼축(華封三祝) 하더라.
심황후의 덕택이 지중(至重)하사 연년이 풍년들어 요순천지(堯舜天地)를 다시 보니 성강지치(盛彊之治) 되었더라. 심황후 부귀 극진하나 항시 중심에 숨은 근심이다만 부친 생각뿐이로다.
일일은 수심(愁心)을 이기지 못하여 시종을 데리고 옥난간에 비겨 섰더니 추월(秋月)은 밝아 산호발에 비쳐들고 실솔은 슬피 울어 나래 안에 흘러들어 무한한 심사를 점점이 불러낼 제, 하물며 상천(上天)에 외로운 기러기 울고 날아오니 황후 반가운 마음에 바라보며 하는 말이,
"오느냐 너 기러기, 거기 잠깐 머물러서 나의 하는 말 들어라. 소중랑(蘇仲郞)이 북해상에서 편지 전하던 기러기냐? 수벽사명양안태의 청원을 못이기어서 날아오는 기러기냐? 도화동의 우리 부친 편지를 매고 네가 오느냐? 이별 삼년에 소식을 못들으니 내가 이제 편지를 써서 네게 전할 터이니 부디 부디 신전(迅傳)하여라."
하고 방 안에 들어가 상자를 얼른 열고 주지(周紙)를 끊어내어 붓을 들고 편지를 쓰려 할 제, 눈물이 먼저 떨어지니 글자는 수먹(水墨)이 되고 언어는 도착(倒錯)한다.
"슬하는 떠나온 지 세삭(歲朔)이 세번 하오니 척호(陟岵)하여 쌓인 한이 하해같이 깊사옵니다. 복미심(伏未審) 그간에 아버지 기체후일향만안(氣體候一向萬安)하옵신지 원복모구구불임하정지지(願伏慕區區不任下情之至)로소이다. 불효녀 심청은 선인을 따라갈 제 하후 열 두 시에 열 두 번씩이나 죽고 싶으되 틈을 얻지 못하여서 오륙 삭을 물에서 자고, 필경에는 인당수에 가서 제수로 빠졌더니 황천이 도우시고 용왕이 구하옵셔 세상에 다시 나와 당금(當今) 천자의 황후가 되었으니, 부귀영화 극진하오나 간장에 맺힌 한이 부귀도 뜻이 없고 살기도 원치 아니하되, 다만 원이 부친 슬하에 다시 뵈온후에 그날 죽사와도 한이 없겠나이다. 아버지 나를 보내고 겨우 지낸 마음 문에 비겨서 생각하는 줄은 분명히 알거니와, 죽었을 제는 혼이 막혀 있고, 살았을 제는 액운이 막히어서 천륜이 끊쳤나이다. 그간 삼년에 눈을 떴사오며, 동중에 맡긴 전곡(錢穀)은 그저 있어 보존하시며, 아버지 귀하신 몸을 십분 보중하옵소서. 쉬이 보옵기를 천만 바라옵고 천만 바라옵나이다."
연월연시 얼른 써 가지고 나와보니 기러기는 간 데 없고, 창망(滄茫)한 구름 밖에 은하수만 기우러졌다. 다만 별과 달은 밝아 있고, 추풍은 삽삽하다. 하릴없이 편지 집어 상자에 넣고 소리없이 울더니, 이때에 황제 내전에 들어오시사 황후를 바라보시니 미간에 수심을 띠었으니, 청산은 석양에 잠긴 듯하고 얼굴에 눈물 흔적이 있으니 황화(黃花)가 태양에 이우는 듯하거늘, 황제 물으시되,
"무슨 근심이 계시관대 눈물 흔적이 있나이까? 귀하기는 황후가 되어 있으니 천하의 제일 귀요, 부하기는 사해(四海)를 차지하였으니 인간의 제일 부(富)라. 무슨 일이 있어 저렇듯 슬퍼하시나이까?"
황후 대왈,
"신첩이 과연 소대욕(所大欲)이 있사오나 감히 여쭙지 못하였읍니다."
황제 대왈,
"소대욕은 무슨 일이온지 자세히 말씀하소서."
하신대 황후 다시금 꿇어앉아 여쭈오되,
"신첩이 과연 용궁 사람이 아니오라 황주 도화동에 사는 맹인 심학규의 딸이옵더니 아비의 눈 뜨기를 위하여......"
몸이 선인에게 팔려 인당수 물에 제수로 빠진 사연을 자세히 여쭈니,
황제 들으시고 가라사대,
"그러하시면 어찌 진작 말씀을 못하시나이까? 어렵지 아니한 일이오니 너무 근심치 마소서."
하시고 그 익일(翌日)에 조회하신 후 만조제신(滿朝諸臣)과 의론하시고,
"황주로 행관(行關)하여 심학규를 부원군 위로 치송(治送)하라."
하였더니, 황주자사 장계(狀啓)를 올렸거늘 떼어 보니 하였으되,
"과연 본주 도화동에 맹인 심학규 있삽더니, 연전에 유리하여 부지거처라."
하였거늘, 황후 들으시고 망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체읍장탄(涕泣長歎)하시니, 천자 간절히 위로하사 왈,
"죽었으면 하릴없거니와 살았으면 만날 날이 있지 설마 찾지 못하리까."
황후 크게 깨달으시사 황제께 여쭈오되,
"한 계책이 있사오니 그리하옵소서. 솔토지신민이 막비왕신(率土之臣民莫非王臣)이오니 백성 중에 불쌍한 바는 환과고독(환寡孤獨) 사궁(四窮)이요. 그 중에 불쌍한게 병신이오나 병신 중에 더욱 맹인이오니, 천하 맹인을 모두 모아 잔치를 하옵소서. 저희들이 천지일월성신(天地日月星辰)이며 흑백장단(黑白長短)과 부모처자를 보아도 보지 못하여 원한 둠을 풀어 주옵소서. 그러하오면 그 가운데에 혹 신첩의 부친을 만나겠사오니 신첩의 원일 뿐 아니오라 또한 국가의 화평한 일도 되올 듯하오니 처분이 어떠하옵시니이까?"
하신대 천자 크게 칭찬하사 왈,
"과연 여자 중의 요순이로소이다. 그러하사이다."
하시고, 천하에 반포하시되,
"무론대부사서인(勿論大夫士庶人) 하고 맹인이어든 성명 거주를 현록(懸錄)하여 각 읍으로 차차 기송(寄送)하라. 잔치에 참여(參與)하게 하되, 만일 맹인 하나라도 영을 몰라 참예치 못한 자 있으면 해도(該道) 신하와 수령은 단단(斷斷) 죄 중하리라."
교령(敎令)이 신명(神明)하시니 천하 각 도 각 읍이 황겁하여 성화같이 거행터라.
이 때 심봉사는 뺑덕어미를 데리고 전전 다니더니, 하루는 들으니 황성에서 맹인잔치를 배설한다 하거늘, 심봉사 뺑덕어미더러 말하되,
"사람이 세상에 났다가 황성 구경하여 보세. 낙양 천리 멀고 먼 길을 나 혼자 갈 수 없네. 나와 함께 황성에 감이 어떠하뇨?"
"길에 다니다가 밤에야 우리 할 일 못 하오리까. 에, 갑세."
"그리하오."
즉일로 길을 떠나 뺑덕어미 앞세우고 수일을 행하여 한 역촌에 당도하여 자더니, 그 근처에 황봉사라 하는 소경이 있는데, 이는 반소경이던 것이었다. 형세도 요부(饒富)한데, 뺑덕어미가 음탕하여 서방질 일쑤 잘한단 말을 듣고, 또 소문이 인근 읍에 자자하여 한번 보기를 평생의 원일러니, 심봉사와 함께 온단 말을 듣고 주인과 의논하고 뺑덕어미를 빼어내려고 주인이 만단(萬端)으로 개유하니, 뺑덕어미도 생각한즉,
'막상 내가 따라가드라도 잔치에 참예할 길 전혀 없고, 돌아온들 형세도 전만 못 하고 살 길이 전혀 없으니 차라리 황봉사를 따라가면 말년 신세는 가장 편안하리라.'
하고 약속을 단단히 정하고,
'심봉사 잠들기를 기다려 내빼리라'
하고 고동목을 놓고 누었더니, 심봉사 잠을 깊이 들었거늘 두말 없이 도망하여 달아난지라.
이 때에 심봉사 잠을 깨어 음흉한 생각이 있어 옆을 만져보니 뺑덕어미 없거늘, 손길을 내밀어 보며,
"여보, 뺑덕이네, 어디 갔는가?"
종시(終是) 동정이 없고, 웃목 구석에 고추섬이 놓여 쥐란 놈이 바시락바시락하니 뺑덕어미가 장난하는 줄만 알고, 심봉사 두 손을 떨 벌리고 일어서며,
"날더러 기어오라는가?"
하며 더듬더듬 더듬으니, 쥐란 놈이 놀라 달아나니 심봉사 허허 웃으면서,
"이것 요리 간다."
하고 이구석 저구석 두루 쫓아다니다가 쥐가 영영 달아나고 없거늘, 심봉사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헛분 마음 가없이 속았도다. 벌써 털속 좋은 황봉사에게 가서 궁둥이 셈을 하는데 있을 수가 어찌 있는가.
"여보 주인네, 우리 집 마누라 안에 들어갔오?"
"그런 일 없소."
심봉사 그제야 달아난 줄을 알고 자탄하여 하는 말이,
"여봐라 뺑덕어미, 날 버리고 어디 갔는가? 이 무상하고 고약한 계집아, 황성 천리 먼먼 길에 뉘와 함께 벗을 삼아 가리오."
울다가 어찌 생각하고 손수 꾸짖어 손을 훨훨 뿌리어 버리며,
"아서라 아서라. 이년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이, 인상불성(人事不省)의 코찡찡이 아들놈 없다."
하고,
"공연히 그런 잡년을 정들였다가 가산만 탕진하고 중로에 낭패하니 도시 나의 신수 소관이라. 수원수구하랴. 우리 현철하고 음전턴 곽씨부인 죽는 양도 보고 살아 있고, 출천효녀 심청이도 이별하여 물에 빠져 죽는 양도 살았거든 하물며 저 만 년을 생각하면 개아들놈이라."
사람 데리고 수작하듯 혼자 군말 하더니 날이 밝으니 다시 떠나갈 제, 이 때는 오뉴월이라 더위는 심하고 땀은 흘러 한출첨배(汗出沾背)하니 시냇가에 의관과 봇짐을 벗어 놓고 목욕하고 나와 보니 의관 행장(行裝)이 간 곳 없거늘, 강변으로 두루 사면을 더듬더듬 더듬는 거동은 사냥개 메추라기 내음 미친 성부르게 이리저리 더듬은들 어디 있을소냐.
심봉사 오도 가도 못하여 방성통곡할 제,
"애고 애고, 낙양 천리 멀고 먼 길을 어찌 가리. 네 이놈 좀도적놈의 새끼야, 내 것을 가져가고 날 못할 일 시키느냐. 허다한 부자집의 먹고 쓰고 남는 재물이나 가져 가 쓸 것이지 눈먼 놈의 것을 갖다 먹고 온전할까? 표모(漂母) 없으니 뉘게 가서 밥을 빌며 위복이 없으니 뉘라서 옷을 주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다 각기 병신 섧다 하되 천지일월성신 흑백장단이며 천하만물을 분별커늘, 어느 놈의 팔자로서 소경이 되었는고."
한참 이리 울며 탄식할 제, 이 때 무릉태수 황성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
"에라 이놈 들러섰다 나이거라. 오험허허."
후배(後陪)사자,
"예이 냅더바라 흐트러진 박석수문돌중중하다. 어돌바라도리야."
한창 이리 왁자지껄 떨떨거려 내려오니 심봉사 벽제(벽除) 소리를 반겨 듣고,
"옳다. 어느 관장이 오나보다. 억지나 좀 써 보리라."
하고 마침 독을 내고 앉았더니 가까이 오거늘, 두 손으로 부자지를 검어쥐고 엉금엉금 기어들어갈 제 좌우나졸 달려들어 밀쳐내니, 심봉사 무슨 유세(有勢)나 한 줄로,
"네 이놈들아, 그리하였느니라. 내가 지금 황성에 가는 소경이다. 너의 성명은 무엇이며 이 행차는 어느 고을 행차인지 썩 일러라."
한창 이렇게 상지(相持)하니 무릉태수 하는 말이,
"너 내 말을 들어라. 어디 있는 소경이며, 어찌 옷을 벗었으며,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가?"
심봉사 여쭈오되,
"생은 황주 도화동에 사는 심학규옵더니 황성으로 가는 길에 날이 심하게 더우매 갈 길 전혀 없삽기로 목욕하고 가려고 잠깐 목욕하고 나와서 보오니 어느 무상한 좀도적놈이 의관과 봇짐을 모두 다가져 갔사오니, 소위 주출지망량(晝出之망양)이요 진퇴유곡(進退維谷)이라. 의관과 봇짐을 찾아 주시옵거나 별반(別般) 처분하여 주옵소서. 그리 아니하옵시면 못갈 밖에 할 일 없사오니 사또께옵서 별반 통촉이 있음을 바라나이다."
태수 이 말을 듣고 가긍히 여기사,
"네 아뢰는 말을 들으니 유식한가보다. 원정(原情)을 지어 올리라. 그런 후에야 의관과 노수(路需)를 주리라."
심봉사 아뢰되,
"좀체 글은 하오나 눈이 어두우니 형리를 주시면 불러 쓰이오리다."
태수 형방에게 분부하여 쓰라 하시니 심봉사 원정을 부르되 서슴치 아니하고 좍좍 지어 올리니, 태수 받아 본즉 하였으되,
복이획죄우천하여 부명야박(僕獲罪于天 賦命也薄)이라.
명막명어일월커늘 혼쌍안이불분(明莫於日月 昏雙眼而不分)하고
낙막락어부처어늘 통구원지난작(樂莫樂於夫妻 痛九原之難作)이라.
조조청운지지터니 만정백수지궁(早操靑雲之志 晩停百首之窮)이로다.
누불건어첨금하고 한무궁이쇄미(淚不乾而沾襟 恨無窮而鎖眉)로다.
조이쇠모이쇠하니 쇠가험어피부(朝而衰暮而衰 衰可驗於皮膚)로다
식유호구하니 표모상존이요 의불엄신하니 수가안재(食有糊口 漂母尙存 衣不掩身 誰家安在)요.
당금의 천자성신문무하사 포조령이연맹하니 병양춘이불유곡(當今天子聖神文武 布朝令而宴盲人 竝陽春而不幽谷)이로다.
동벌행관하고 서행경략(東伐行關 西行經略)이라.
노운원혜여소지자일장(路云遠兮 余所持者一杖)이요
가소빈헤여소패자단표(家素貧兮 余所佩者簞瓢)로다.
외혹이지유금헤여 학징현지욕기(學曾賢之浴沂)터니
의복야관망야를 견실어백사지장(衣服也冠網也 見失於白沙之場)하니
반전야낭탁야를 난추어노인총중(盤纏也囊탁也 難推於路人叢中)리라.
자고신세하면 촉번저양(自顧身勢 觸藩저羊)이라.
적신나체는 주출지망량(赤身裸體 晝出之망량)이오
백면애소는 절영지외유라
복유상공은 이이지재요 두소지치(伏惟相公 李?之才 杜召之治)라.
걸구상궁지조하며 망구처확지어(乞救傷弓之鳥 忙救處확之魚)하사
참고금내미유지력하면 송차생재조지은(參古今來靡有之力 頌此生再造之恩)할 테오니 통촉처분(洞燭處分)이라.
하였거늘, 태수 칭찬하시고 통인 불러 의롱(衣籠) 열고 의복 일습(一襲) 내어 주고, 급창 불러 가마 뒤에 달린 갓 떼어 주고, 수배(隨陪) 불러노비 주시니, 심봉사 또 말하되,
"신 없어 못가겠소."
"신이야 할 길 있느냐? 하인의 신을 주자 하니 저희랴 발을 벗고 가랴?"
할 제, 마침 그 중에 마부질 심히 하여 마상객(馬上客)의 돈을 일쑤 잘 발러내었는데, 말죽 값도 한 돈이면 열 두 닢 돋쳐내고, 신이 성하여도 떨어졌다 하고 신값을 총총 돋쳐내고, 신을 사서 말궁둥이에다 달아 있거늘, 원님이 그놈의 소행이 괘씸하여라고 그 신을 떼어 주라 하시니 급창(及唱)이 달려들어 떼어 주니, 심봉사 신을 얻어 신은 후에,
"그 흉한 도적놈이 오동수복(烏銅壽福) 김해 간죽(簡竹) 마침맞게 맞추어 대 속도 아니 메었는데 가져갔으니 오늘 가면서 먹을 담배대 없소."
태수 왈,
"그러하면 어찌하잔 말가?"
"글쎄 그렇단 말씀이오."
태수 웃으시고 연죽을 내주시니 심봉사 받아가지고,
"황송하오나 서초(西草) 한 대 맛보았으면 좋을 듯하오."
방자 불러 담배 내주시니, 심봉사 하직하고 황성으로 올라갈 제 대성통곡 우는 말이,
"노중에서 어진 수령 만나 의복은 얻어 입었으나 길을 인도할 이 없으니 어찌하여 찾아갈까!"
이렇듯이 탄식하며 가더니 한 곳을 당도하니 녹음은 우거지고 방초는 숙어졌는데, 앞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두르고 뒷내 버들은 초록장(草綠帳) 둘러 한가지로 늘어지고 한가지로 펑퍼져서 휘늘어진 곳에, 심봉사 녹음을 의지하여 쉬더니, 각색 새 짐승 날아든다.
홀연비조(忽然飛鳥) 뭇새들이 농조화답(弄調和答)에 짝을 지어서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들 제, 말 잘하는 앵무새며 춤 잘추는 학두루미와 수오기 따오기며 청망산 기러기 갈매기 제비 모두 다 날아들 제, 장끼는 낄낄, 까투리 표푸두둥, 방울새 덜렁, 호반새 수루룩, 온갖 잡새 다 날아든다. 만수문전 풍년새며, 저 쑥국새 울음 운다. 이 산으로 가면서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면서 쑥국쑥국, 저 꾀꼬리 울음 운다. 머리 곱게 빗고 물건너로 시집가자. 저 가마귀 울고 간다. 이리로 가며 갈곡, 저리로 가며 꽉꽉. 저집 비둘기 울음 운다. 콩 하나를 입에 물고 암놈 수놈이 어루느라고 둘이 혀를 빼어 물고 구루우구루우 어루는 소리 할 제, 심봉사 점점 들어가니 뜻밖에 목동 아이들이 낫자루 손에 쥐고 지게목발 두드리면서 목동가로 노래하며 심맹인을 보고 희롱한다.
만첩산중 일발총총(萬疊山中 一髮叢叢) 높아 있고
청산녹수는 일일양양(靑山綠水 溢溢洋洋) 깊어 있다.
호중천지 여호양(壺中天地 如浩洋)이 여기로다.
지팡막대 자로 들고 천리강산 들어가니
천고지후(天高地厚) 이 산중에 가유지지(可遊之地) 무궁(無窮)하다.
등동고이서소하고 임청류이부시(登東皐而舒嘯 臨淸流而賦詩)로다.
산천기세 좋거니와 남해풍경 그지없다.
유유일경(油油一頃) 못이기어 칼을 빼어 높이 들고 녹수청산 그늘 속에 오락가락 내다보니,
동서남북 산천인들 배회일망(徘徊一望) 구경하니
원근산촌 두세집이 낙화모연(落花暮煙) 잠겼어라.
심산처사(深山處士) 어디매오 물을 곳이 어렵도다.
무심할손 저 구름은 추수봉봉(秋水峯峯) 띄어 있다.
유유한 가마귀는 청산 속에 왕래한다.
황산곡(黃山谷)이 어디매뇨 오류촌(五柳村)이 여기로다.
영척(寧戚)은 소를 타고 맹호연(孟浩然) 나귀 탔네.
두목지(杜牧之) 보려고 백낙천변(白樂川邊) 내려가니,
장건(張騫)은 승사하고 여동빈(呂東賓) 백로 타고
맹동야(孟東野) 넓은 들의 와룡강변(臥龍岡邊) 내려가니,
팔진도(八陳圖) 축지법(縮地法)은 제갈공명뿐이로다.
이 산중에 들어오신 심맹인이 분명하다.
이리저리 노닐면서 종일토록 즐기니,
요산요수(樂山樂水) 하온 곳에 인의예지(仁義禮智) 하오리다.
송풍이작금(松風以作琴)하고 폭포로 북을 삼아 소소분별(小小分別) 다 버리고,
흥을 겨워 노닐 적에
아침날 깬 술을 점심 지어 다 먹으며,
황총적 손에 들고 자진곡을 노래하니,
상산사호(商山四皓) 몇몇인고 나를 합하면 다섯이요.
죽림칠현(竹林七賢) 몇몇인고 나를 합하면 여덟이라.
고소성외 한산사의 야반종성(古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이 여기로다.
시왕(十王))전에 경(磬)쇠치는 저 노승아,
삼천세계(三千世界) 극락전에 인도환생하는구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정성으로 외우는데
극력 안심하여 옛 사람을 생각하니
주시절 강태공(姜太公)은 위수에서 고기 낚고
유현주(劉賢主) 제갈량(諸葛亮)은 남양운중 밭을 갈고
이승기절 장익덕은 우리촌에서 걸식하고
이 산중에 들어오신 심맹인도 또한 때를 기다리라.
목동들이 이렇듯이 비양하는 것이었다. 심봉사 목동 아이들을 이별하고 촌촌 전진하여 여러날 만에 황성이 차차 가까우니, 낙수교(洛水橋)를 얼른 지나 녹수진경(綠水秦京)을 들어가니, 한 곳에 방아집이 있어 여러 계집사람들이 방아 찧거늘, 심봉사 피서하려고 방아집 그늘에 앉아 쉬더니, 여러 사람들이 심봉사를 보고,
"애고, 저 봉사도 잔치에 오는 봉사요? 요사이 봉사들 한 시게하던고."
"저리 앉았지 말고 방아 더러 찧지."
심봉사 그제야 안 마음에 헤아리되,
"옳지, 양반의 댁 종이 아니면 상놈의 좃집이로다."
하고 '기롱(譏弄)이나 하여 보리라.'
대답하되,
"천리타향에 발섭(跋涉)하여 오는 사람더러 방아 찧으라 하기를 내 집안어른더러 하듯 하니 무엇이나 좀 줄려면 찧어주지."
"애고, 그 봉사 음흉하여라. 주기는 무엇을 주어. 점심이나 얻어먹지."
"점심 얻어 먹으려고 찧어 줄 테관대."
"그러하면 무엇을 주어. 고기나 줄까?"
심봉사 하하 웃으며
"그것도 고기야 고기지만은 주기가 쉬우리라고."
"줄지 안줄지 어찌 아나. 방아나 찧고 보지."
"옳지, 그말이 반허락이렸다."
방아에 올라서서 떨구덩떨구덩 찧으면서 심봉사 지어내어 하는 말이,
"방아소리는 잘 하지마는 뉘라서 알아주리."
여러 하님들이 그말 듣고 졸라대니 심봉사 견디지 못하여 방아소리를 하는구나.
어유아어유아 방아요.
태고라 천황씨는 목덕(木德)으로 왕 하시니 이 나무로 왕하셨는가. 어유아 방아요.
유소씨 구목위소(有巢氏 求木爲巢.)하니 이 나무로 집을 얽었는가. 어유아 방아요.
신농씨 유목위뢰(神農氏 有木爲?)하니 이 나무로 따비를 했나. 어유아 방아요.
이 방아가 뉘 방안가. 각덕하님 가죽방안가. 어유아 방아요.
떨구덩떨구덩 허첨허첨 찧은 방아 강태공의 조작방아. 어유아 방아요.
적적공산(寂寂空山) 나무를 베어 이 방아를 만들었네.
방아 만든 제도 보니 이상함도 이상하다.
사람을 비양턴가 두 다리 벌려내어
옥빈홍안(玉빈紅顔)에 비녀를 보니 한 허리에 잠(簪) 질렀네. 어유아 방아요.
길고 가는 허리를 보니 초왕 우미인(虞美人) 넋일런가.
추천 가 노던 발로 이 방아를 찧겠구나. 어유아 방아요.
머리 들고 있던 양은 창해노룡(滄海老龍)이 성을 낸듯
머리를 숙이어 조아리는 양은 주란왕의 돈수(頓首)런가. 어유아 방아요.
용목팔여되야분을 찧어내니 옥입이다.
오고대부(五고大夫) 죽은 후에 방아소리 끊쳤더니
우리 성상 착하옵셔 국태민안 하옵신데 하물며 맹인잔치 고금에 없었으니
우리도 태평성대에 방아소리나 하여보세. 어유아 방아요.
한 다리 높이 밟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양과 실룩실룩 삐죽삐죽 조개로다. 어유아 방아요.
얼시고 좋을시고 지아자자 좋을시고.
흥을 겨워 이렇게 노니 여러 하님들이 듣고 깔깔 웃으며 하는 말이,
"에요 봉사, 그게 무슨 소린고. 자세히도 아네. 아마도 그리로 나왔나보오."
"그리로 나온 게 아니라, 하여 보았지."
좌우 박장대소 하더라.
그리저리 방아 찧고, 점심 얻어 먹고, 봇짐에다 술 넣어 지고 지팡막대를 척 쥐고 나면서,
"자 마누라들, 그리들 하오. 잘 얻어 먹고 갑네."
"어 그 봉사, 심심치 아니하여 사람 좋은데. 잘 가고 내려올 제 또 오시오."
심봉사 거기서 하직하고 차차 성중에 들어가니 억만 장안이 모두 다 소경 빛이라. 서로 딱딱 부딪쳐 다니기 어렵더라.
한 곳을 지내더니 한 여인이 문 밖에 섰다가,
"저기 가는 게 심봉사시오?"
"게 누군고? 날 알 이 없건마는 게 누가 나를 찾나?"
"여보시오, 댁이 심봉사 아니오?"
"과연 기로다. 어찌 아는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으니 게 잠깐 지체하오."
이윽고 나와 인도하여 외당(外堂)으로 앉히고 석반(夕飯)을 드리거늘, 심봉사 생각하되,
'괴이하다. 이 어쩐 일인고?'
또한 찬수(饌需) 비상하거늘, 밥을 달게 먹은 후에 날이 저물어 황혼이 되니 그 여인이 다시 나와,
"여보시오 봉사님, 날 따라서 내당(內堂)으로 들어갑시다."
심봉사 대답하되,
"이 집 외주인(外主人) 유무는 모르거니와 어찌 남의 내당으로 들어 가리오."
"예, 그는 허물치 마시고 나만 따라 오시오."
"여보시오, 무슨 우환 있어 이러하시오? 나는 동티경(經)도 읽을 줄 모르오."
"여보, 헛말씀 그만하고 들어가 보시오."
지팡막대를 끌어당기니 끌려가며 의심이 나,
'아뿔사, 내가 아마도 보쌈에 들어가지. 위태하다.
이처럼 군말하고 대청에 올라가서 좌상에 앉은 후에 동편의 한 여인이 묻되,
"심봉사시오?"
답왈,
"어찌 아오?"
"아는 도리 있소. 먼길에 평안히 오시오? 나의 성은 안가요. 황성에서 세거(世居)하옵더니 불행하여 부모 구몰(俱沒)하옵고 홀로 이 집을 지키고 있사오며, 당년은 이십오 세요. 아직 성혼치 못하였거늘, 일찌기 복술(卜術)을 배워 배필될 사람을 가리옵더니, 일전에 꿈을 꾸니 한 우물에 해와 달이 떨어져 물에 잠기거늘 첩이 건져 품에 안아 보이니, 하늘의 일월은 사람의 안목이라, 일월이 떨어지니 나와 같이 맹인인 줄알고 물에 잠겼으니 심씨인 줄 알고, 일찌기 종을 시키어 문에 지나는 맹인을 차례로 물어온 지 여러날이오. 천우신조(天佑神助)하사 이제야 만나오니 연분인가 하옵니다."
심봉사 픽 웃어 왈,
"말이야 좋소마는 그러하기 쉽사오리까."
안씨맹인 종을 불러 차를 들여 권한 후에,
"거주는 어디오며 어떠하신 댁이오니까?"
심봉사가 자기 신세 전후수발을 낱낱이 말하며 눈물을 흘리니 안씨맹인이 위로하고 그날 밤에 동침(同寢)할 제, 한창 조흘 고비에 둘이 다 없는 눈이 벌떡벌떡할 듯하되, 서로 알 수 있나. 사람은 둘이나 눈은 합하면 넷이로되 담배씨만큼 보이지 아니하니 하릴없어 잠을 자고 일어나니, 주린 판이오 첫날밤이니 오죽 좋으랴마는 심봉사 수심으로 앉았거늘, 안씨맹인이 묻되,
"무슨 일로 즐거운 빛이 없사오니 첩이 도리어 무안하오이다."
심봉사 대답하되,
"본디 팔자가 기박(奇薄)하여 평생을 두고 징험한즉 막 좋은 일이 있으면 언짢은 일이 생기고 생기더니, 또 간밤에 한 꿈을 얻으니 평생 불길할 징조라. 내 몸이 불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벗겨 북을 메우고, 또 나뭇잎이 떨어져 덮이어 보이니 아마도 나 죽을 꿈 아니오?"
안씨맹인 듣고 왈,
"그 꿈 좋소. 흉즉길(凶則吉)이라 내 잠깐 해몽하오리다."
다시 세수하고 분향(焚香)하고 단정히 꿇어앉아 산통을 높이 들고 축사를 읽은 후에 괘를 풀어 글을 지었으되,
"신입화중(身入火中)하니 희락 가기(喜樂可期)요. 거피작고(去皮作鼓)하니 고(鼓)는 궁성(宮城 또는 宮聲)이라, 궁에 들어갈 징조요. 낙엽이 귀근(落葉歸根)하니 자손을 가봉(子孫可逢)이라. 대몽이오니 대단 반갑사오이다."
심봉사 웃어 가로되,
"속담에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이오, 피육불관(皮肉不關)이오, 조작지설(造作之說)이오. 내 본디 자손이 없으니 누구를 만나며, 잔치에 참여하면 궁에 들어가고, 녹밥도 먹는 짝이지."
안씨맹인이 또 말하되,
"지금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나 필경 두고 보시오."
아침밥을 먹은 후에 궐문 밖에 당도하니 벌써 맹인잔치에 들라 하거늘, 궐내에 들어가니 궐내가 오죽 좋으랴마는 빛 쬐어 거무충충하고 소경 내가 진동한다.
이 적에 심황후 여러 날을 맹인잔치할 제, 성명성책(姓名姓冊)을 아무리 들여놓고 보시되 심씨맹인이 없으니, 자탄하사,
"이 잔치 배설한 바는 부친을 뵙자고 하였더니 부친을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인당수에 죽은 줄로만 아시고 애통하여 죽으셨나? 몽운사 부처님이 영검(靈驗)하사 그간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소비시 맹인축에 빠지셨는가? 잔치는 오늘이 망종이니 친히 나가 보리라."
하시고 후원에 전좌(殿座)하시고 맹인잔치 시키실새 풍악도 낭자하며 음식도 풍비(豊備)하여 잔치를 다한 후에 맹인 성책을 올리라 하여 의복 한 벌씩 내어 주실새 맹인이 다 하례하고, 성책 밖으로 맹인 하나가 우뚝 섰으니 황후 물으시되,
"어떠한 맹인이오?"
여상서(女尙書)를 불러 물으시니 심봉사 겁을 내어,
"과연 소신이 미실미가(靡室靡家)하여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치어 유리(流離)하여 다니오매 어느 고을 거주 완연히 없사오니 성명성책에도 들지 못하옵고 제 발로 들어 왔삽나이다."
황후 반기시사,
"가까이 입시하라."
하시니, 여상서 영을 받자와 심봉사의 손을 끌어 별전(別殿)으로 들어갈새, 심봉사 아무런 줄 모르고 겁을 내어 걸음을 못이기어 별전에 들어가 계하에 섰으니, 심맹인의 얼굴은 몰라뵐러라.
백발은 소소하고 황후는 삼 년 용궁에서 지냈으니 부친의 얼굴이 의의하여 물으시되,
"처자 있느냐?"
심봉사 복지(伏地)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여쭈오되,
"아무 연분(年分)에 상처하옵고 초칠일이 못다 가서 어미 잃은 딸 하나 있삽더니, 눈 어두운 중에 어린 자식을 품에 품고 동냥 젖을 얻어 먹여 근근 길러내어 점점 자라나니 효행이 출천하여 옛 사람에 지나더니, 요망한 중이 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오면 눈을 떠서 보리라 하니, 신의 여식이 듣고, '어찌 아비 눈 뜨리란 말을 듣고 그저 있으랴.'하고 달리는 판출(辦出)할 길이 전혀 없어 신도 모르게 남경 선인들에게 삼백 석에 몸을 팔리어서 인당수의 제수로 빠져 죽사오니 그 때에 십오 세라. 눈도 뜨지 못하고 자식만 잃었사오니, 자식 팔아먹은 놈이 이 세상에 살아 쓸데없사오니 죽여 주옵소서."
황후 들으시고 체읍하시며, 그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매 정녕 부친인줄은 알으시되, 부자간 천륜에 어찌 그 말씀이 그치기를 기다리랴마는 자연 말을 만들자 하니 그런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듯 못?듯 황후 버선발로 뛰어내려와서 부친을 안고,
"아버지, 내가 과연 인당수로 빠져 죽었던 심청이오."
심봉사 깜짝 놀라,
"이게 웬말이냐?"
하더니 어찌 하 반갑던지 뜻밖에 두 눈이 갈라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두 눈이 활짝 밝았으니 만좌(萬座) 맹인들이 심봉사 눈 뜨는 소리에 일시에 눈들이 헤번덕 짝짝, 갈치새끼 밥 먹이는 소리같더니 뭇 소경이 천지명랑하고, 집안에 있는 소경 계집 소경도 눈이 다 밝고, 배안의 맹인 배밖의 맹인 반소경 청맹(靑盲과니까지 몰수(沒數)이 다 눈이 밝았으니 맹인에게는 천지개벽(天地開闢) 하였더라.
심봉사 반갑기는 반가우나 눈을 뜨고 보니 도리어 생면목(生面目)이라. 딸이라 하니 딸인 줄은 알것마는 근본 보지 못한 얼굴이라 알 수 있나. 하도 좋아서 죽을 둥 말 둥 춤추며 노래하되,
"얼시구 절시구 지아자 좋을시구. 홍문연(鴻門宴) 높은 잔치의 항장(項莊)이 아무리 춤 잘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을 어찌 당하며, 하고조 마상득천하(馬上得天下) 할 제 칼춤 잘 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 당할소냐. 어화 창생(蒼生)들아, 부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하소. 죽은 딸 심청이를 다시 보니 양귀비가 죽어 환생하였는가? 우미인이 도로 환생하여 왔는가? 아무리 보아도 내 딸 심청이지. 딸의 덕으로 어두운 눈을 뜨니 일월이 광화(光華)하여 다시 좋도다. 경성이출 경운이 흥하니 백공상화이가(景星出 卿雲興 百工相和而歌)라. 요순천지 다시 보니 일월이 중화(重華)로다. 부중생남중생녀는 나를 두고 이름이라."
무수한 소경들도 철도 모르고 춤을 출 제,
"지아자 지아자 좋을시고 어화 좋구나.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마라. 돌아간 봄 또다시 돌아오건마는 우리 인생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젊기 어려워라. 옛글에 이렀으되 시자난득(時者難得)이라 하는 것은 만고명현(萬古名賢) 공맹(孔孟)의 말씀이요. 우리 인생 무슨 일 있으랴."
다시 노래하되 상호 상호 만세를 부르더라.
즉일에 심봉사를 조복(朝服)을 입히어 군신지례(君臣之禮)로 조회하고, 다시 내전에 입시하사 적년(積年) 그리던 회포를 말씀하며 안씨맹인의 말씀 낱낱이 하니, 황후 들으시고 채교(彩轎)를 내어 보내어 안씨를 모셔들여 부친과 함께 계시게 하시고, 천자 심 학규를 부원군으로 봉하시고 안씨는 정렬부인을 봉하시고, 또 장승상부인을 특별히 금은을 많이 상사하시고, 도화동 촌인을 연호잡역(煙戶雜役)을 물시(勿施)하시고 금은을 많이 상사(賞賜)하여 동중의 구폐(救弊)하라 하시니 도화동 사람들이 은혜 여천여해(如天如海)하여 천하 진동하더라.
무창태수를 불러 예주자사로 이천(移遷)하시고, 자사에게 분부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즉각 착대하라 분부 지엄하시니 예주자사 삼백 육 관에 행관(行關)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올리거늘, 부원군 청루(廳樓)에 좌기하시고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들여 분부하사,
"네 이 무상한 년아, 산첩야심(山疊疊夜深)한데 천지 분별치 못하는 맹인 두고 황봉사를 얻어 가는 게 무슨 뜻이냐?"
즉시 문초하니,
"역촌(驛村)에서 여막(旅幕)질하는 정연이라 하는 사람의 계집에게 초인(招人)함이로소이다."
부원군이 더욱 대로하여 뺑덕어미를 능지처참(陵遲處斬)하신 후에 황봉사를 불러 이르는 말씀이,
"네 무상한 놈아, 너도 맹인이지? 남의 아내 유인하여 가니 너는 좋거니와 잃은 사람은 아니 불쌍하냐? 속설에 탐화광첩(探花狂蝶)이라 하기로 그러할까. 소당(所當)은 죽일 일이로되 죽일 일이로되 특별히 정배(定配.)하니 원망치 말라. 추일 증시(證示)하여 훗세상 사람이 불의지사(不義之事)를 본받게 하지 못하는 일이라."
하시고 하교하시니라.
만조백관이며 천하백성들이 덕화(德化)를 송덕(頌德)하더라.
"자손이 창대(昌大)하고 천하에 일이 없고, 심황후의 덕화 사해에 덮였으며, 만세만세 억만세를 계계승승 바라오며 무궁 무궁하옵기를 천만 복망하옵니다."
하더라.
황후 천자에게 여쭈되,
"이러한 즐거움이 없사오니 태평연(太平宴)을 배설하오이다."
황제 옳게 여기사 천하에 반포하여 일등 명기 명창(名妓名唱)을 다 불러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만조백관 모아 즐기실새, 천하 제후(諸侯) 솔복(率服)하고 사해진보(四海珍寶) 조공(朝貢)하며, 일등명창 일등명기 천하에 반포하여 거의 다 모았으며, 태평성대 만난 백성 처처에 춤추며 노래하되,
"출천대효 우리 황후 높으신 덕이 사해에 덮였으니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에 강구동요(康衢童謠) 즐거움이, 창해로 태평주(太平酒) 빚어 여군동취(與君同醉)하며 만만세를 즐겨 보세. 이러한 태평연에 누가 아니 즐길소냐."
이렇듯이 노래할 제, 천자며 부원군이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명무 명창을 패초(牌招)하시와 가무금슬 희롱(歌舞琴瑟 戱弄)하며 삼일을 대연하사 상하동락(上下同樂) 즐긴 후에 천자와 황후와 부원군이며 다 각기 환궁하시더라.
각설 이때에 황후며 정렬부인 안씨 동년 동월에 잉태하여 동월에 탄생하며, 둘이 다 득남하신지라. 황후의 어진 마음 자기 앞은 고사하고 부친이 생남(生男)하심을 들으시고 천자께 주달(奏達)하신대 황제 또한 반기사 피륙과 금은 채단(綵緞)을 많이 상사하시고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신대, 부원군이 망팔쇠년(望八衰年)에 아들을 낳아 놓고 기쁜 마음 측량 없어 주야를 모르던 차에, 또한 황제께옵서 금은채단이며 피륙과 명관(命官)을 보내어 위문하시니 황공감사하와 국궁배례(鞠躬拜禮)하고 예관을 인도하여 황은을 못내 축사하신대 부원군이 더욱 기꺼하며, 일변 조복을 갖추고 예관을 따라 별궁에 들어가 황후께 뵈온대 황후 또한 생남하였거늘, 즐거운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황후 부친의 손을 잡고 옛일을 생각하며 일희일비로 즐거워 하매 부원군도 또한 슬퍼하시더라.
이 때 부원군이 집에 돌아와 명관을 따라 옥계(玉階)하에 다다르니 상(上)이 극히 칭찬하시되,
"들으매 경이 노래(老來)에 귀자(貴子)를 얻은 바, 또한 짐의 태자와 동년 동월의 동근생(同根生)이니 그 아니 반가우리오. 언야선명(言也鮮明)하면 타일에 국사를 의론하리라."
하시더라.
군이 여쭈되,
"석일(昔日)에 공자께서도 하시기를 '생자가 비난양자난이오 양자가 비난교자난이라(生子非難養子難 養子非難敎子難)' 하였으니 후사를 보사이다."
하고 물러나와 아이 상을 보니, 활달한 기상이며 청수(淸秀)한 골격이 족히 옛사람을 본받을러라.
이름을 태동이라 하여 점점 자라 십 세에 당하매 총명 지혜가 무쌍이오 시서음률(詩書音律)을 능통하매 부모의 사랑함이 장중보옥(掌中寶玉)에다 비할소냐.
무정세월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라 십삼 세를 당한지라. 이 때 황후 태자를 여의고자 하사 동월 동일에 구생(舅甥)간 혼사를 주달하신대 황제 기꺼하사 광문(廣問)하라 하신데, 이 때에 마침 좌각로(左閣老) 권 성운이 일녀를 두었으되, 태임의 덕행이며 반희의 재질을 가졌으며 인물은 위미인(衛美人)을 압두(壓頭)할지라. 이 때 연왕(燕王)이 공주 있으되 안양공주라. 덕행이 탁이(卓異)하고 백사 민첩함을 듣고 상이 전교하사 연왕과 권각로를 입시하야 어전(御殿)에서 구혼하신대, 공주와 소저 또한 동갑인데 십육 세라. 기꺼이 허락하거늘, 상이 하교하시되,
"권소저로 태자의 배필을 정하시고 연왕의 공주로 태동의 배필을 삼 음이 어떠하뇨?"
하신대 좌우(左右) 다,
"옳사이다."
주달하거늘, 황후와 부원군이며 조정이 즐기더라.
즉시 태사관을 명하여 택일하라 하신대, 춘삼월 망일(望日)이라. 국중의 대경사라. 길일이 당하매 대연을 배설하고, 각장 제후와 만조백관이 차례로 시위하고, 두 부인은 삼천궁녀가 시위하여 전후좌우로 옹위 하여 교배석(交拜席)에 친영(親迎)할새, 일월같은 두 신랑은 백관이 모셨으니 북두 칠성의 좌우보필이 모신 듯하고, 울태화용 고운 태도 녹의홍상(祿衣紅裳)에 칠보단장(七寶丹粧)이며 각색 패물 요상(腰上)으로 느리우고 머리에는 화관(花冠)이라. 삼천 궁녀 모인 중에 일등 미색을 초출(抄出)하여 두 낭자를 좌우로 모셨으니 반드시 월궁항아라도 이에서 더 휘황치 못할러라. 금수단광무장(錦繡緞廣모帳)을 반공(半空)에 솟아 치고 교배석에 친영하니 궁중이 휘황함을 일구난설(一口難說)이라.
두 신랑이 각기 처소로 좌정하니 동방화촉 첫날밤에 원앙이 녹수를 만나듯 쇄락(灑落)한 정으로 은은히 밤을 지내고 나와 태자는 각로를 먼저 보니 각로 양주(兩主) 즐거워함을 이루 측량치 못할러라.
즉시 태자를 연통(緣通)하여 조회에 국궁(鞠躬)하니 상이 즐거워 하사 부원군을 입시하여 동좌(同座)에 신행 인사를 받으시고, 만조백관을 조회 받으신 후에 하교하시되, "짐이 진작 태동을 조정에 들이고자 하되 미장지전(未丈之前)이라 지어금 무명직(至於今無命職)하였으니 경(卿)등의 소견에는 어떠하뇨?"
하신대, 문무백관이 주왈,
"인야출등(人也出等)하오니 즉교(卽敎)하옵소서."
하거늘,상이 즉시 태동을 입시하사 품직을 내리실새 한림학사 겸 간의대부 도훈관에 이부시랑을 하게 하시고 그 부인은 왕렬부인을 봉하시고, 금은 채단을 많이 상사하시고 왈,
"경이 전일은 서생이라 국정을 돕지 아니하였거니와 금일부텀은 국록지신이라 진충갈력하여 국정을 도우라."
하신대, 시랑이 국궁하고 물러나와 모친께 뵈온대 즐기고 반기는 마음이야 어찌 다 형언하리오.
또 별궁에 들어가 황후전에 배사(拜謝)한대, 황후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나 말씀하시되,
"신부가 어떠하더뇨?"
하신대 피석(避席) 대왈,
"숙행(淑行)하더이다."
황후 또 문왈,
"금조 입시에 무슨 벼슬 하였느냐?"
대왈,
"이러이러 하였나이다."
황후 더욱 즐거워 태자와 시랑을 데리고 종일 즐긴 후에 석양에 파연(罷宴)하시고 왈,
"쉬이 신행(新行)하라."
하시거늘, 신랑이 대왈,
"슁이 데려다가 부모 전에 영화를 보시게 하오리다."
한대, 황후 대열(大悅)하사,
"내 말도 또한 그 뜻이로다."
하시더라.
이날 태자와 한림이 물러나와, 수일 후 부원군이 택일하여 왕렬부인을 신행하시니 부인이 구고(舅姑) 양위 전에 예로써 뵈온대 부원군이며 정렬부인이 금옥같이 사랑하시더라. 별궁을 새로 지어 왕부인을 거처하시게 하니라.
각설 이 때 한림이 낮이면 국사를 도모하고 밤이면 도학(道學)을 힘쓰니 무론대소사서인(毋論大小士庶人) 하고 칭찬 아니 할 이 없더라.
이럭저럭 한림의 나이 이십 세라. 이 때에 상이 한림의 명망과 도덕을 조신에게 문의하시고, 일일은 심학사를 입시케 하사 가라사대,
"짐이 들으매 경의 명망과 도덕이 국내에 진동한지라. 어찌 벼슬을 아끼리오."
하시고 승품(昇品)하사 이부상서 겸 태학관을 시키시고,
"태자와 동유(同遊)하라."
하시며 그 부친을 또 승품하여 남평왕을 봉하시고, 정렬부인 안씨로 인성황후를 봉하시고, 또 상서 부인은 왕렬부인 겸 공렬부인을 봉하시니, 남평왕이며 상서와 인성왕후며 다 황은(皇恩)을 축사하고,
"우리 무슨 공이 있어 이다지 품직(品職)을 하느뇨?"
하며 주야 황은을 송덕하시더라.
이 때에 남평왕이 연당팔순(年當八旬)이라. 우연히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라. 당금(當今)의 황후의 어지신 효성과 부인의 착한 마음 오죽이 구병(救病)하랴마는 사자는 불가부생(死者不可復生)이라 칠일만에 별세하시니 일가가 망극(罔極)하고, 또한 황후 애통하사 황제께 주달하니 상이 왈,
"인간팔십고래희(人間八十古來稀)니 과도히 애통치 마소서."
하시고,
"명릉후원에 왕례(王禮)로 안장하라."
하시고,
"왕후는 삼년 거상(三年居喪)이라."
하시니라.
부원군의 조년(早年)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에화 세인들아 고금이 다를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경(輕)히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는 사람마다 있느니라. 심황후의 어진 이름 천추의 유전(遺傳)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