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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절도사 휘 경의 묘비록

한들 약초방 2015. 3. 15. 18:26

     병부참정 박공 묘비록(兵部參政 朴公墓碑錄)


 

내가 이미 외람이 밀산군 박공 밀양의 음기를 기술한지라 이제 또그 장자 경의의 묘비록을 나에게 부탁하니 저버리지 못하여 삼가 그 집의 족보를 살펴보건대 어머니는 문화유씨이며 첨의찬성 시녕군 치상장경공 돈의 여라 공의 이력인즉 충정왕조에 중랑장을 지냈고 공민왕 조에는병부참정 익대 공신이었다,충해왕과 충정왕사이에 군소들이 정치함으로 나라가 점점 어려움에 쳐하고 충정왕이 또 황음 무도하거늘 공이 충성서러운 곧은 말로써 바로잡고 충혜왕 동모제인 공민왕으로 바꾸어 왕을세우고 나라의 명복을 붙잡으니 의리가 햇빛보다 더 밝으며 지절곧기가 서리보다 능가하니 조연에서는 관중의 범이라 칭하였다,
공의 쳐음 이름은 경무였는데 어필로 경의로 고치고 왕게서 시를지어 내렸으니 그 시에뜻은 신하로서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여 섬기고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부리니 천지의 뜻뜻한법이 되는 경자의뜻이요,
일월과 빛을다투는 당당한 의자는 일편책심 검은색으로 물들이지 못하도록 하였고,
포은 선생이 창주하기를 산곱고 물맑아 빼어난 청기라고 박씨문중에 범같이 고함지르는 영웅의 풍수천지를 진운 하였네,
백성을 평안히하는 큰 청임 소인들을 징계하고 세상을 건져내는 넓은 도량은 군자의 주창이로다,
평생토록 지키는마음 한결같아서 보국하는 깊은지로 가슴속에 품었네, 이글을 보더라도 가히 바라는것이 크다는것을 보겠도다,
공이 더디어 양임하여 여주강상에 돌아와 남은 여생을 보내니 뒤에 삼중대광 문하시중을 증직하고 익호를 충민이라 내렸다,
공의 묘는 여주 박씨포 임좌에 있고 배위는 파평윤씨니 안적의 딸이다, 이남일녀를 낳았으니 장남은 득중이라 삼중대광 문하시중이요, 차남은 흥중이니 중랑장이라, 사위는 조곤이니 평양 사람으로 삼사사겸이다, 손자분은 성균관 대사성으로 신호위상호군을 겸 하였다,
갱은 승사랑으로 문하합인과 지돈령부사를 지냈고 함양옹주와 짝하였으니 정종대왕의 첫째딸이다, 나머지는 번영하여 다 기록하지않는다, 공의묘소에 해마다 비석을세우자는 의론이 있었으나 일이크고 힘이적어서 실마리를 풀어나가지 못한지가 여러백년 이러니 이제야 모든후손들이 합의하여 돌을 다듬어서 묘전에 빛내고자 하니 그 위선의 성심에 감동하였도다,
어찌아름답다 아니하랴,더디어 위하여 새기노니 나라님들의 빛나는 종손이요 유명한 아버지의 아들이로다,
문무가 대를잊고 충효로 전가하니 훈업과 공사 태산보다 더높도다, 하늘에서 내려준 작위가 또한따랐으니 신후에 한이없도다,
어진이름이 하늘 땅과같이 함게장대하리라,
내가새기는글이 백에 한번이라도 바르게 칭하여지지 못하였을까 부끄럽도다,
             은율 송재량 근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