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삼한 벽공 도대장군 제단 음기
高麗三韓壁控都大將軍祭壇陰記
공의 휘는 욱이요 성은 박씨니 신라 시조왕에서 계출하였고 삼한 벽공 도대장군은 그의 관직이다. 삼가히 보첩을 고찰하니 공과 공의 큰아들 요동독포사 휘난의 밀성대군 휘 언침의 맏에 있고 각파 중조의 위에 있으니 실로 우리 박씨의 같이 받을 한 아버지다. 이문충공 제현이 말하길「밀성박씨 각파 심히 번창하나 그 근본을 보면 모두 대장군에게서 나왔다」하니 어찌 상고한 바 없이 말하였으리요. 밀주 추화산에 주신사가 있어 공의 소상을 봉안하고 이 고을의 인사가 서로 나아가 제를 지내니 이로써 미루어 보면 공의 공덕과 사행이 반드시 국가에 동량이요 민족에 표범하였건마는 고려의 세대 멀고 문헌이 산실되어 그 자세함을 알길이 없으니 자손의 한 하는바나 그러나 본보의 절차는 말할 수 없는지라 정묘년 겨울에 밀성대군 제단이 이루어지니 자손이 다 말하되「대장군과 독포사의 양공을 부설하여 소목의 의를 모방하여야 한다」하기에 단의 좌우에 봉배하여 배치(천신제 지낼땅)에 비를 세워 탁자만 달리하여 같이 제를 지내게 되니 三조의 하늘에 계신 영이 기꺼이 흠향하시리라. 희라 경주에 숭덕전이 있어 三각의 예를 모방하여 시조왕을 제 지내고 옥천에 원덕사가 있으니 임술년 중에 성손들이 세원 대군선조와 각파 중조를 제 지내고 원덕사 지은지 六년에 이 단이 또 되었으니 공있고 덕있는 선조는 향사 아니할 수 없는지라 우리 종친의 의전이 비로소 갖추워 유감이 없도다 명하여 왈
신라의 왕손이요 고려의 대신이네 三한을 수위하니 백대의 의형일세 능곡이 변천되어 묘소가 분명치 않네 오곡 신이 하늘에 계셔 별과 같이 번쩍이네 우리를 개발하고 도와 잠영세가 되었네 어김없이 제를 지내어 천만년에 이리하리
정묘년 십이월 일 후손 유학 정 구 근찬 후손 교관 성 립 근명 후손 유학 순 병 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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