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덕사지서 遠德祠誌序
옥천(沃川)에 원덕사(遠德祠)는 밀성대군(密城大君)이하 二十一위의 영혼을 모신 곳이니 후손 강와공(剛窩公)이 창건한 자이라 사우(祠宇)가 一신하게 중수하여 여러 만양의 거액을 조달한 자는 선비 장규(莊圭)이다. 대개 五十년래로 부터 봄 가을로 이슬과 서리가 내릴 때에 폐지함이 제사를 올리었는데 매양 화수(花樹)의 강론까지 겸하여 추원보본(追遠報本)으로 선조의 덕을 닦는 의기가 지극했다 또 사우가 있으매 가히 사지(祠誌)가 없을 수가 없다 하여 하나의 책을 편성(編成)하여 발간하게 하는 자는 강와(剛窩)의 아들 연와(淵窩)와 다못 장규(莊圭)이니 또한 가히 잘 이어서 편술 할 것이며 아울러 후세에 전할 말이 있으니 아! 위대하지 않는가 무릇 이 사우에 들어와서 이 책을 읽는 자는 받드시 뭉클하여 중심에 감상이 있을 것이니 강와의 뜻으로 뜻을 삼으며 장규의 정성으로 정성을 삼으며 연와의 사업으로 사업을 삼은 즉 대군(大君)의 후손되기에 욕됨이 없을 것이요 또한 세분의 사공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어다. 강와공의 휘는 만구(滿九)요 그분의 형님은 옥성재(玉成齋)이며 휘는 정구(珽九)인데 송연재(宋淵齋) 송심재(宋心齋) 두 선생의 고제(高弟 : 제일 훌륭한 제자)요 연와(淵窩)의 이름은 연호(淵浩)인데 일찍부터 우리 선고(先考) 고옹(固翁)에게 수업하였으니 가히 학문의 연원(淵源 : 선생과 제자의 전하는 전통)이 주고 받은 바가 있음을 보겠다. 장규씨는 이름과 직위가 다같이 높았고 위선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으니 영지(靈芝)와 예천(醴泉 : 두가지가 모두 根源이 있음)을 가히 상상할 수가 있다. 일찍이 교정의 일로써 우리 형님 성재공 재직(誠齋公在直)에게 부탁하였는데 불행이도 세상을 떠났으므로 다시 나에게 서문 쓰기를 요구하니 이제와 예전을 생각하매 더욱 슬픈 눈물을 금할길이 없다. 그러나 나도 또한 남의 착한 일 이르기를 즐겨하므로 감히 사람이 못나고 지식이 천박하나 사양하지 못하고 이름을 붙치는 것으로 영광을 삼으므로 대강 우와 같이 서술한다. 계축(癸丑) 一九七三년 사월하순에 덕은(德恩) 송재욱(宋在郁)삼가 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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