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陵朴氏강릉박씨
순~돈
강릉박씨(江陵朴氏)의 시조 박순(朴純)은 호가 석탄(石灘), 시호는 문충(文忠)으로 신라 제5대 파사왕(婆娑王)의 35세손으로 1174년(고려 명종 4)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좌승선(左承宣) · 한림학사(翰林學士) · 중추원사(中樞院事) · 남경유수(南京留守)를 지낸 뒤 병부상서(兵部尙書)와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이르렀다.
또 상장군(上將軍)을 겸하면서 상장군(上將軍) 석린(石隣)의 모반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보정정국공신(保定靖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과 검교태부(檢校太傅)에 특제되었다. 신종 때는 좌복야(左僕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후에 강릉(江陵)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
《병오보(丙午譜)》에 보면, 강릉박씨는 신라 5대왕 파사왕에서 계출, 5세손인 대아찬(大阿湌) 박제상(朴堤上)이 중조가 되고, 900여 년동안 실전되어 박순을 기세조로 한다고 하였다.
다른 곳에서는 시조를 신라 시조(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라는 주장하면서 박제상을 중조로 하는 세보도 있다. 《계묘보(癸卯譜)》에서는 강릉박씨의 수보(修譜)는 숙종 42년부터 220년 동안 7회에 걸쳐 모두 박순을 1세로 삼아왔으니 의심스런 일은 의심스런대로 전한다고 하였다.
또 《정미보(丁未譜)》에는 강릉읍지(江陵邑誌)의 기사를 소개하면서 박씨는 모두 신라 박혁거세의 후예라 하였고 김주원(金周元)이 신라가 망하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올 때 박씨도 따라와 토사(土賜)로 하사받은 것이 득관(得貫) 유래라고 하였다.
병사공파(兵使公派) 승지공파(承旨公派)
이판공파(吏判公派) 사휴공파(四休公派)
평해공파(平海公派) 교리공파(校理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 삼가공파(三可公派)
농헌공파(聾軒公派) 가선공파(嘉善公派)
습독공파(習讀公派) 이정공파(梨亭公派)
사련공파(司鍊公派) 우산공파(愚山公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