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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城朴氏(음성박씨)

한들 약초방 2015. 3. 8. 14:15

陰城朴氏(음성박씨)

 

시조 서 <자: 양종, 호: 죽계, 시호: 충정>는 1231년(고종 18) 서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몽고의 장수 살이타이가 쳐들어와 철주를 함락하고 이어 구주를 공격하자 삭주분도장군 김중은, 정주분도장군 김경손 등과 함께 구주에 모여 성을 사수 루차, 대포차 운제 등 온갖 무기로 공격해 오는 몽고군과 한달동안이나 격전 끝에 마침내 이를 물리쳤다. 구주를 버리고 개성을 먼저 함락 고종의 항복을 받고 군세를 정비하여 귀로에 다시 구주를 공격하는 몽고군을 또 다시 대파하여 몽고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때 몽고 자수 살리타이는 박서 같은 장수는 처음 봤다고 하였다. 그는 뒤에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고 음성백에 봉해졌다. 그는 원래 죽성 박씨였으나 음성백에 봉해졌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본관을 음성으로 하게 되었다.

 

음성박씨() 시조 박서()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넷째 아들인 죽성대군() 박언립()의 11세손으로,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장수 살리타이()가 쳐들어와 철주()를 함락하고 이어 귀주()를 공격하자 서북병마사(西使)로 이를 물리쳐서 몽골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후에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라 음성백()에 봉해졌다. 후손들은 죽성박씨()에서 분적하여 그를 시조로 하고 관향을 음성()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음성()은 충청북도 북서쪽 끝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진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 장수왕 때 잉홀현()이라 하였고,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신라의 영토가 되어 757년(경덕왕 16) 음성현()으로 고쳐서 흑양군( : )에 속하게 하였다. 995년(고려 성종 14) 중원도() 진주()에 속하였고, 1018년(현종 9) 양광도() 충주목()에 속하게 되었으나 1356년(공민왕 5) 충청도() 국원경() 음성현으로 개편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와서 현감()을 두었고, 1592년(선조 25) 폐현되어 청안현()에 속하였으며 1618년(광해군 10)에 다시 음성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충주부 음성군으로 승격하였고, 1896년 충청북도로 이관하였다. 1956년에 군내면이 음성읍으로, 1973년에 금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